매거진 아기와 나

별것 없는 엄마의 시간

그럼에도 소중한

by 윤신


아기 도깨비가 아빠 도깨비를 따라 할머니 집에 갔다. 오랜만에 나의 시간이 생겼다는 말이다. 뭘 할까. 뭘 먹을까. 아니, 먹는 건 그다지 상관없다. 먹는데 쓸 시간과 여유로 책이라도 한 장 더 펼쳐보는 게 좋을 것이다. 며칠 밤 만나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을 두 시간 만에 다 읽고 덮었다. 바닥이 꺼진 소파에 가로누워 둘째 고양이를 끌어안은 채 이탈리아의 푸른빛 바다에서 수영하는 상상을 했다.



별것 없지만 아기 도깨비가 있었다면 상상도 못 할 시간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아기는 요즘 내가 누워있는 꼴을 못 본다. 새벽의 고단함을 못 이긴 아침, 찬 바닥에 잠시 눕노라면 녀석은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나안나(앉아앉아)' 내 몸을 흔든다. 그렇다고 내게 무언갈 원하는 것도 자신의 놀이에 끼어들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안나(앉아)'있으란 거다. 내 시선의 높낮이가 중요한 걸까. 누워있다 곯아떨어지는 게 싫은 걸까. 알 수 없다. 해도 뜨기 전 겨울 아침의 모녀는 매번 더 눕고 싶은 자와 이제 그만 앉으라는 자의 대치로 시작된다.



환한 민트색의 표지를 덮고 생각한다. 이젠 뭘 할까. 간결한 문장과 캄파리의 여운을 다른 글로 덮고 싶지 않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세시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간. 뭘 해도 좋고 뭘 해도 아직 여유로울 충만한 시간이다.

산을 걸어볼까. 문득 창유리 너머로만 보던 나무 산 아래 흙을 밟으며 내가 뱉는 숨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늘 꿈꾸는 욕망이다. 나대로의 속도로 무리 없이 반복해 걷는 걸음과 그 주위를 둘러싼 숲과 햇볕. 멀지 않은 나트막한 산을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살짝 땀이 배어 나올 테고 초봄의 바람은 더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 욕망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 너머 시야에 먼지의 층이 노랗게 깔렸다. 문을 열어 환기를 할까 말까 하며 생각한다.

이제 정말 봄이구나.



일고여덟시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을 기억하는 데에만 신나는지 일상의 반복은 대충대충 넘겨버리고 만다. 아기 도깨비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읽지 않는 책을 드림하고 온 집안을 뒤엎어 고양이 털을 미는 동안, 그러고 나서 싱크대에 널브러진 그릇을 씻고 두 번의 빨래를 하고 그 빨래를 개고 고양이 똥을 치우는 동안, 뇌세포는 아마도 새벽의 나처럼 주름 사이에 드러누워 깜박 졸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십 센티미터의 타원은 매일 하는 일에는 그 어떤 주의도 상상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한다. 하긴 청소기 속 휘몰아치는 고양이 털이 꽃잎으로 바뀐다던가 알록달록한 색색의 장난감이 말을 하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법은 없다. 세탁된 옷들이 상쾌하다며 기지개를 켜는 일도 없다. 그저 나의 발품과 손품으로 집은 조금씩 정리되어질 뿐이다. 아마도 그들이,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돌아오면 무색해질 품이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 난 대부분의 시간 동안 홀가분하게 살림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다리에 매달리는 아이가 없었고 고양이 똥이 있는 다용도실에 들락이는 아이를 막을 필요도 없었다. 집어넣으면 넣는 대로 빼내던 작은 손도 없이 모든 책이 책장에 가지런하다. 고대하던 나의 시간도 별거 없구나. 바짝 마른 아기 수건을 마지막으로 개며 혼자 픽 웃었다. 반나절 집안일을 하며 '자유로움'을 느끼다니. 유효기간이 있을 깔끔을 떨며 반듯하게 갠 옷들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곧 자정이 되어 간다. 내일 저녁 그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조금의 시간이 남아있다.

뭘 할까, 뭘 볼까, 뭘 하지 않을까.

별 볼일 없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난 내일 늦은 아침까지 누워있을 것이다.

누구를 챙겨주는 것도 나를 챙기는 것도 잊고 다만 누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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