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7,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난 늘 셈이 어두운 아이였다.
화폐라는 개념은커녕 세 들어 사는 우리 집과 벽 건너 자리한 주인집의 차이도 몰랐다. 지독한 가난 한가운데에 살면서 가난에 빠져 허우적 대지 않은 건 모두 무던함 때문이었다. 무신경에 가까운 무지였다. 리어카로 이사를 다니면서도 아슬아슬 떨어지려 하는 세간 살림을 받치며 깔깔거리던 낙천이었다. 지금보다 가난한 사람이 많아선지 동네 대부분이 비슷했던 탓인지 손가락질이나 비웃음을 받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어쩌면 이마저도 좋을 대로 편집된 기억인지도 모른다.
열 살을 갓 넘긴 그 시절 나와 동생은 매일 낡은 탁자에 놓인 천 원을 나눠 집 앞 점빵에서 군것질로 장난감으로 교환했다. 둥근달을 보며 바라면 이루어진 다기에 더 많은 사탕을 먹고 더 많은 장난감을 가질 수 있게 탁자에 이천 원이 놓이길 바랐다(어쩌면 큰 욕심이다. 늘 가지던 것의 두배이니). 하지만 딱 그것뿐이었다. 바라는 것도 꿈꾸는 것도 우리의 손바닥 위에 한 번쯤 놓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난을 치고 내기를 할 때는 현실의 백 원 이백 원 따위의 숫자가 아니었다.
'네가 이기면 나중에 이천만 원 줄게! 내가 이기면 네가 줘.'
이천 원도 없는 주제에 만 배에 달하는 허무맹랑한 숫자를 말했다. 잘은 몰라도 아마 어른이 되면 덥석덥석 줄 수 있는 돈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래나 저래나 현실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 맹한 셈 개념은 어른이 될 때까지도 그대로다. 사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여태껏 만난 사람 중 천하제일의 저축 왕이자 짠순이(그 돈은 모두 자식에게 쏟았다)의 딸 치고는 심히 어쭙잖다. 그녀를 포함해 똑소리 나게 재정 관리를 잘하는 이들을 보면 그저 존경스럽고 우주처럼 경이롭기까지 하다.
적어보자면 나의 셈 방식은 이렇다. 10을 가지고도 어떤 면에서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면 1보다 못하다. 어느 숫자든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10을 주고 5를 받아도 10을 준 건 결국 나니까 그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걸 이용하는 이가 있다 해도 그것 또한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숫자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 이쯤 되면 천성에 가까운 것도 같다.
그러나 상대의 5와 나의 5가 다르고 그때의 10이 지금의 10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잘 알고 있지는 않다. 엄마가 알면 혀를 찰 일이다.
이렇게 느닷없이 셈에 대한 고백이 나온 건 모두 며칠 전 다른 이들의 대화를 엿들은 탓이다.
하지만 엿들었다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쩌렁했고 명쾌하면서도 시원했다.
철철철 흐르는 여름 계곡의 물소리처럼.
"우리 아이도 그렇게 매일 물어봐요."
"그럼 뭐라고 대답해요?"
"'엄마 오늘 얼마 벌었어?' 하고 물으면 씨익 웃으면서 '열 개 벌었지!'하고 손가락 열 개를 쫙 펴고 보여줘요. 딸아이가 열까지 셀 수 있거든요. 그럼 아이는 '와아! 엄마 최고!'하고, 둘이 얼굴 보고 깔깔 웃어요."
엄마는 아이가 셀 수 있는 최대의 숫자로 안심시키고 기쁘게 한다. 또 아이는 엄마가 재정에 곤란을 겪고 있지는 않는지 체크한다. 그럴 수도 있구나. 상쾌한 충격이었다. 셈에 막연하고 무지하게 자라는 것보다 알뜰살뜰함도 배우고 돈의 흐름도 배우면 참 좋겠다 싶었다. 물론 돈을 '버는' 행위 역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어쨌든 어린아이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돈을 벌고 관리하고 쓰는 개념을 알면 좋을 것이다. 단지 우유는 2700원, 커피는 4100원 같은 금액을 아는 것보다도 훨씬 훨씬.
비록 여전히 셈이 어두운 엄마지만 어쩔 수 있나. 지금껏 기저귀를 갈아입히고 이유식을 만들고 잠투정하는 아이를 재우던 아기 엄마 역할처럼 배우고 익혀나가는 수밖에. 일단 모를 땐 타인을 모방하는데서부터 시작이다. 계곡물을 닮은 그녀처럼 손가락 열 개를 쫙 펼치는 거다. 그리고 씩 웃는 거지.
아윤아,
엄마 열 개 벌었어, 열 개.
만약 이 말을 할 때 돈을 벌고 있지 않다면 주어를 바꾸던가 동사를 바꾸든지 해야지.
아윤아, 아빠 열 개 벌었어, 열 개.
혹은 엄마 열 개 벌고 싶어, 열 개.
흠, 아무래도 두 문장 모두 괜찮은 걸까 의문이 든다.
역시 나에겐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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