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9
비 오는 날 회를 먹고는 그만 식중독에 걸려 종일 누워있는 엄마 곁으로 아가가 발랑 누웠다. 간간히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와 창문에 부딪힌다. 톡톡, 톡톡톡. 손가락으로 창을 가리키자 아기는 둥근 뺨을 보이며 고갤 돌린다. 나란히 누워 빗방울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의 비는 짜증이 난 아윤이를 닮았어. 입을 앙다물고 씩씩거리며 두 팔을 휘적거리며 '우우우우'소리를 낸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있는 힘껏 비를 퍼부어댄다.
어젯밤의 나와 그 역시 있는 힘껏 속의 것을 바깥으로 퍼부었다. 체기라고 오해한 탓에 양손 엄지손가락엔 바늘이 낸 붉은 반점이 모래처럼 있었다. 늦은 오후부터 먹은 회와 우동을 게워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다만 누워서 '으으' 소리만 메아리처럼 주고받았다. 식중독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를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자주 그런다). 아니, 기한이 지난 요플레는 먹기 전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기라도 하지 어제 먹은 회는 간만에 기분 내느라 신나게 먹었을 뿐 그 어떤 마음의 준비운동도 없었다.
자, 이제 너희들 이거 먹으면 이삼일 아플 거야. 먼저 노란 위액이 나올 때까지, 목구멍이 쓰라릴 때까지 토하고 나면 그 뒤엔 오한이 찾아오지. 발열이나 두통이 동반할 수도 있어.
누군가 말해줬다면 애꿎은 손가락까지 고통받을 일은 없었을 텐데.
새벽까지 번갈아 화장실로 뛰어가며 그는 나의, 나는 그의 토하는 소리를 들었다. 각자 아픈 몸을 끌어안고 서로를 지켜봐야 했다. 침대 위의 두 사람이 서로를 걱정할 겨를도 체면 차릴 여유도 없이 화장실로 달려가 거인의 소리 같은 괴음을 내고 지쳐 돌아와 다시 끙끙거리는 모습은 하나의 코미디 같았다. 손이 벌벌 떨리도록 아픈 와중에도 조용히 킥킥 웃어댔다. 크, 하는 소리와 함께 회엔 역시 소주라고 기분 내던 게 바로 몇 시간 전인데 이게 뭐람. 이런 것도 부부의 '동고동락'이라 부를 수 있을까.
속의 뒤틀림이 조금 진정되자 우린 신음이 아닌 대화를 했다. 아니 그 중간의 것을 했다.
"으... 다행이야. 아윤이는 안 아파서. 으으."
"응으으으으... 다행이야. 으으으"
사실 그 난리 속에 아가는 한번 깨지도 않고 곤히 잘만 잤다.
식중독의 후유증은 오늘까지 남아 하루 8할의 시간을 거실 아기 매트 위에서 드러누워 보냈다. 아윤이는 내 주위를 맴돌다가 책꽂이 쪽으로 가서 책을 빼다가 다시 내게 와서 나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일어나, 일어나. 엄마' 뭐 그런 말이었겠지.
"아윤아 오늘만 좀 봐줘."
이런 유의 말을 하며 누워서 책을 읽어주고 누워서 간식을 주고 힘겹게 몸을 끌어 아기 밥을 챙겨주고 다시 돌아와 누웠다. 그래선지 잘 눕지도 않는 아가가 오늘따라 내 곁에 발랑 잘도 눕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뽀뽀 백번을 하고 다시 픽 쓰러진다. 아마도 그것을 3-4번 정도 반복하니 비 대신 밤이 내렸다.
밤이 되자 쓰린 배와 두통도 성큼 잦아들고 온갖 짜증을 부리던 하늘도 조금 잠잠해졌다. 종일 집에서 답답했을 아가를 위해 아주 잠깐의 산책에 나섰다.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하는 아기를 보니 하루 종일 비 맞은 지렁이처럼 누워 있던 내가 떠올라 미안해졌다. 엄마는 아파도 안될 일이다. 정신 차리라며 내 뺨을 찰싹 때리던 작은 손바닥이 떠오른다. 그래. 내겐 네가 있지. 아가, 이젠 엄마 안 아프도록 할게.
손을 따뜻이 비벼 그래도 애쓴 오늘의 나를 쓸어내린다. 목부터 어깨까지 먼지를 털듯 찌뿌둥한 기운을 떨어트린다.
내일은 나의 몸과 하늘이 활짝 개길 바라본다.
아니면 또 찰싹, 나도 하늘도 아가에게 맞을지 모를 일이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