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당신의 선택은?

육아판 금도끼 은도끼

by 윤신


별 해괴한 꿈을 다 꿨다.

이게 바로 아기 엄마의 숙명인가 싶기도 하고 뭔 맥락 없는 '금도끼 은도끼'아류작인가 싶기도 한 꿈이었다. 그 시작은 이렇다. 희미한 꿈속의 나는 어딘가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쑤욱 야매 도사 같은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도사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행색은 그냥 장발의 거지였다. 분명 서로 초면이었는데 그는 갑자기 친근한 사람처럼 살가운 반말로 물었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너에게 두 개 중 하나의 손을 줄 수 있다고 쳐. 그럼 넌 뭘 가질 거야?"


하긴 꿈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본 적 없는 도시처럼 한없이 낯선 사람인데도 오랜 친구같이 느껴지거나 이미 잘 아는 사람인데도 눈 맞춤 한 번조차 서투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이고 아니고 맞고 그른 게 모호하고 한계가 없는 세계.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불투명한 세계.

어쨌든 그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꿈속의 나는 내 팔을 봤다. 두 팔 다 멀쩡하다. 팔이 세 개일 필요는 없지, 꿈에서도 인간의 팔은 두 개로 족했다. 굳이 안 줘도 된다고 얘기하니 그가 느닷없이 근엄하게 돌변했다. 표정은 언젠가 동화책에서 본 스크루지의 것과 비슷하다. 과거로 돌아가기 전 심통 난 얼굴과 말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하나는 잠깐의 토닥임만으로도 아기를 재울 수 있는 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어떤 숟가락을 쥐고 그 어떤 음식을 먹여도 아기가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손이다. 그 둘 중 원하는 게 없느냐?"


다른 인격으로 변한 태도와 말투, 그리고 표정은 너무 난데없지만 그걸 인식할 겨를이 없다. 정말 그걸 준다고? 순식간에 아기를 재울 수 있고 넙죽넙죽 먹일 수 있는 손이라고? 어서 빨리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마음에 초조해졌다. 조금이라도 답이 늦어지면 금방이고 말을 취소하고 다시 인격을 바꾼 채 실실 웃으며 돌아갈 것 같다. 무서운 얼굴 아래 정말 뎅강 잘려진 두 손이 들려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꿈이니 의미 없다. 하지만 아주 쉽게 아기를 재우는 손과 양껏 아기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손이라니. 어려워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난 어느 손을 취해 어떤 괴로움과 불안함을 덜 것인가. 잠인가 밥인가.



사실 그 뒤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손을 택했는지, 그가 정말 능력의 손을 줬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는 나의 분명한 거짓말에 그가 감동한 나머지 두 손을 다 줬는지 말았는지. 맥 빠지는 기억력이다. 동시에 한 아기의 엄마에게 아기의 잠과 밥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무의식 속에서조차 번뇌한다는 증거다.


엄마들이 자주 오가는 맘 카페에서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고민은 밥 아니면 잠, 생존 문제다. 내 아이가 똑똑하고 잘났고를 떠나서 무탈히 잘 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애초에 맘 카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린 영유아 엄마들이 활동하는 무대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맘때 엄마들의 걱정거리는 크게 아기가 '밥을 안 먹어요'와 '잠을 안 자요'로 나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아윤이가 이유식을 잘 먹지 않아 스트레스받고 부들거린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아기들이 잘 먹는다는 리소토도 만들고 고기를 갈아 주먹밥도 만들고 시판 이유식을 먹이기도 하며 아윤이가 잘 먹는 식감과 재료를 모색한다. 노력에도 상관없이 입을 꾹 다물거나 퉤, 하고 바로 뱉어내면 그게 참 더럽고 치사할 수가 없다. 저 좋으라고 먹이지 나 좋으라고 먹이나? 하루 세 번 차곡차곡 쌓이는 상한 마음에 울기도 했다. 하지만 육아는 비우는 것이라던가. 조급한 마음을 조금씩 비우려 했다. 조언대로 간식을 줄이고 분유를 줄이며 '배고프면 잘 먹겠지.' 했다.

물론 그러도고 난 여전히 가끔 울컥거리고 아윤이 역시 평균의 근사치도 먹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잠은 또 어떤가.

나의 아이는 보통은 잘 자는 편이지만 어김없이 낮잠을 안 잘 때도 있고 밤잠을 설칠 때도 많다. 특히 잠자기 전의 몸부림은 과히 '킹덤'의 조선 좀비를 연상시킨다. 몸을 활처럼 까뒤집고 목을 홱홱 도리질하며 팔다리를 허공에 젓는다. 끄어어하는 괴로운 목소리를 내다가 가만히 있다가 경련처럼 파닥이다가 아주 난리가 난다. 안타까운 마음에 들쳐 안고 자장노래를 불러도 아기 좀비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아기 잠잘 때 좀비'라고 검색해도 아기 잠 때문에 엄마가 좀비가 된다는 말은 있어도 아기가 좀비처럼 변한다는 말은 없다. 그저 과격한 잠투정이겠거니 넘겨짚을 뿐이다.


저 근본 없는 꿈, 그러니까 육아에 지친 엄마판 금도끼 은도끼를 꾼 것은 며칠 전이다.

그러나 까맣게 잊고 있던 꿈속 질문을 다시금 떠오르게 된 건 오늘 저녁 아윤이의 역동적인 잠투정을 달래면서다. 내가 만약 잠을 잘 재우는 손을 택했다면 아가가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고 순식간에 잠에 들었을 텐데. 그리곤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아니야, 밥 잘 먹이는 손이 더 좋지. 아기가 잘 먹으면 아기의 몸도 튼튼해지고 내 정신도 튼튼해질 테니까 말이야. 도무지 그 어느 것도 쉬이 선택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다.


아아, 해괴망측한 꿈의 원인은 어쩌면 못난 엄마의 소원의 발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이라도 만약 그 거지 도사가 꿈에 다시 나타난다면 슬그머니 물어봐야겠다.

저기 혹시, 두 개 다는 어떻게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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