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사물의 재발견

작년 10월에 쓴 사물의 재발견들입니다

by 윤신

Ⅰ 체온계의 재발견


38도 혹은 37.5도.

고열과 미열을 구분하는, 언제 아기에게 해열제를 먹여야 하는지의 기준점이 되는 온도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체온계다.


이틀 전 예방주사를 맞고 와 저녁부터 살짝의 미열을 내던 아윤이의 이마가 새벽 즈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둑한 사위를 손으로 짚어나가 '으음 으음'하는 앓는 아이의 몸과 이마를 쓸었더니 여느 날과 달리 유난히 따끈따끈한 것이다. 호빵이나 군고구마라면 몰라도 아기의 몸은 따끈해선 안된다. 특히나 따끈과 뜨거움의 경계의 온도라면 더욱이.

까만 먹물을 쏟은 듯 캄캄한 마음을 끌어안고 밤새 잠을 설쳤다. 미온의 손수건으로 아기 이마를 닦으며 체온계만 자꾸 만지작거렸다. 미래형 건축물처럼 생긴 네모난 체온계가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먼저 전원을 켜고 잰 내 체온이 35.5라는 숫자로 측정되었다. 그렇게 낮은 온도는 처음이라 내 이마를 짚어봤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날이 추워 몸도 차가워진 걸까, 얼토당토않은 추측을 하며 아윤이의 이마를 잰다. 35.6도. 말도 안 되는 숫자다. 이렇게 열이 나는 몸이 35도 일리가 없지. 게다가 내 몸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0.1도 차이라니. 이래서야 언제 아가에게 해열제를 먹여야 하는지 초보 엄마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몇 번 더 35도를 넘지 않는 체온계를 갖다 대다 결국 어슴푸레한 손 감각으로 예상해본다. 아마 37.5도는 되지 않을까. 아니야 38도일지도 몰라.

그렇게 아기의 몸을 쓸고 체온을 추정하며 하룻밤을 꼴딱 새웠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기 전 해열제의 결단을 내리고 바둥이는 아가를 꼭 안고 약을 먹였다. 체온계로 아기의 몸의 온도를 다시 재 본다. 0.1도 오른 35.7도가 나온다. 이 멍청한 체온계. 애꿎은 체온계를 나무란다. 살다 살다 체온계에 대고 화를 낼 날이 오기도 하는구나. 새로운 녀석이 오면 넌 곧장 쓰레기통이야 하고 으름장을 놓는 날이.





Ⅱ 코바늘의 재발견


코바늘을 배우고 나서 가장 많이 뜬 물건은 마스크 줄이다. 대충의 감각으로 줄을 만들고 작은 꽃을 달아 내 것을 만들고 난 뒤부터는 자신감이 생겨 하나 둘 떠서 주위 이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언제까지고 하늘의 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파란) 색을 골라 길게 길게 사슬 뜨기를 한 뒤 T 단추로 양 끝마무리를 했다. 삐뚤빼뚤하지만 일상의 고마움을 소박하게 전하기에 딱이다. 그러다 가지고 있던 T 단추가 다 떨어질 때쯤 정작 아윤이의 것을 만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아기가 마스크를 쓰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은 그대로지만(사라져라, 코로나!) 당장의 필요는 바람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임이 곧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윤이의 마스크 줄을 만들 준비를 한다. 시작매듭을 하고 아기의 몸에 맞는 길이만큼 사슬 뜨기를 잇는다. 한 코씩 늘릴 때마다 '사랑해'라고 왼다. 일종의 주문이다. 말의 온기가 뜨개 줄로 너에게 닿기를, 매일 만나는 파란 꽃이 내 희망을 전하기를. 반복적인 리듬과 읊조림은 지난 기억을 꺼낸다. 종교도 없던 내가 매일같이 108배를 하며 한 번의 절에 '감사합니다'를 외던 시절이다. 그 말의 힘이 그때를 살게 하던 시절이다. 이제는 새로운 힘을 내야 할 시기다. 한코를 만들고 '사랑해, 내 딸'하고 주문을 왼다. 이 작은 막대가 이어가는 실이 너를 지켜주기를,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얼마 되지 않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의도치 않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물과 상황은 한 사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작은 돌멩이를 보면 '네가 봤다면 금방이고 주웠겠지'하고, 뺨에 닿는 바람엔 한껏 기뻐하며 바람을 맞던 네 작은 뒤통수를 떠올린다.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더니 지금의 내 모든 길의 끝은 어쩌면 네가 아닐까. 무심히 지나치던 하나의 사물에 새로운 이야기가 생긴다. 작은 몸으로 모든 것의 의미와 구조를 바꾸고 엮어 이끌어 나간다.

분명 내일도 그 내일도 어떤 사물의 새로운 이야기가 생길 것이다.



_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