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쓴 글입니다, 20200924
계절이 지나가는 중이다.
한낮에는 늦여름의 온기가 아침저녁에는 초가을의 바람이 불어 하루에 두 계절을 만난다. 이러다 첫눈이 오고 금방 겨울이 오고 마는 건 아닐까, 서운한 마음에 조급해진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기 옷장의 옷과 박스에 담겨있던 켜켜이 쌓인 손바닥만 한 옷들을 땅바닥에 모조리 펼쳐놓았다. 방에 생겨난 옷 동산을 보고 있자니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과연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어느새 동그만 옷 산아래쯤 되는 곳에 아윤이가 자리를 잡고는 옷 하나를 쪽쪽 빨고 있다. 한숨이 웃음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윤이는 하루에도 두세 번 놀이터를 찾는다. 산책하다가 들리거나 오로지 놀이터만을 위해 걸음을 하기도 한다. 아침의 놀이터는 한산하면서도 상쾌하고 점심의 놀이터는 느긋한 따스함이 맴돌고 오후의 놀이터는 하원한 아이들로 올망졸망하다. 빛의 각도도 다르고 뺨에 닿는 공기의 온도도 다르지만 아윤이는 한결같이 놀이터만 보면 환희의 탄성을 지른다. 양손 검지 끝에 힘을 주고 놀이터를 콕콕 가리키거나 두 손을 하늘로 쭉 펴고 달리듯 걷기도 한다. 일 년 인생이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기쁨이겠지.
누군들 아니겠냐만 성인이 되고서 아이를 갖기 전엔 한 번도 놀이터를 찾지 않았다. 지나다 가끔 눈길을 던진 놀이터 구석 그늘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엄마들을 보며 '아이들에겐 작은 놀이터보다 더 넓은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애송이 같은 생각이다. 아이에 대해서고 육아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자 애초에 '뭔가'의 '뭔'자도 모르고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놀이터에 선 아윤이의 얼굴을 보니 알겠다. 놀이터를 떠날 때 기둥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보니 알겠다. 이곳은 철제 놀이 기구의 모음집이 아니라 상상과 모험이 가득한 탐험선이다. 신나는 일이 마르지 않는 보물섬 같은 곳이다.
낮 동안의 아이들은 짧은 옷소매를 입고 있더니 늦은 오후엔 모두 바람막이를 챙겨 입었다.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 갓 떨어진 밤톨 같은 나의 딸만 달랑 반팔 티셔츠에 칠부바지를 입고 있다. 언제 이렇게 북풍이 불었담. 날씨에 민감하지 못한 엄마다. 그나마 혹시 몰라 챙긴 토끼 귀가 달린 회색 후드를 입히고 조만간 옷 정리를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게 어제다.
막연히 옷 정리를 다짐했지만 옷을 쏟아놓고 보니 다시 그대로 집어넣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어떤 분류 방식으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물려받은 옷들의 주인의 나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떤 옷은 내년에 입을 수 있고 다른 옷은 내후년에야 가능하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사철을 가졌다. 머리가 빙그르르 돈다. 옷 동산에 폭 파묻힌 아윤이를 따라 나도 그만 다 잊고 곁에서 널브러지고 싶다. 말없이 겹겹이 쌓인 옷을 째려보지만 옷들은 죄가 없고 심지어 아기자기 이쁘기만 하다.
어쩌겠는가.
차곡히 정리를 잘해서 제 몫의 역할은 하게 해 줘야지.
이리저리 방황한 끝에 결국 당장 입을 옷(실내복, 상의, 하의)과 올겨울에 입을 옷, 내년 여름과 겨울의 것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내년의 정리는 내년의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일단 정하고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옷을 개고 분류하면 끝이다. 그 마음으로 한 벌씩 작은 보자기 같은 옷을 개고 쌓기 시작한 게 초저녁이다. 한나절 동안 정리는커녕 생각과 방황(옷 정리의 의미로는)만 한 셈이다. 굳센 다짐으로 옷을 펼쳐놓기만 하고 병원에 다녀온 뒤 두 곳의 놀이터를 가고 세 끼를 챙겨 먹고 아윤이를 씻기고 나니 하루의 시간이 Delete 키를 누른 것처럼 사라져 있다. 게다가 옷 동산이 있는 방의 전등이 나간 탓에 해가 지고 나서는 옷의 형태를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이제 그만하고 내일로 미루라는 해님의 계시로 알고 산뜻하게 손을 털었다. 당장 내일 놀이터에서 입을 옷만 챙겨두고 동그마한 옷 동산을 어둠에 총총 남겨두었다.
놀이터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줍는 아이를 보니 이젠 정말 어쩔 수 없는 가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짧은 소매의 옷은 모두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도 몰라.
한 발짝 걷고 낙엽 하나, 두 발짝에 낙엽 하나, 꼬막손에 쥐어진 바삭이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더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올해 입던 반팔과 반바지는 이제 더 이상은 입히지 못할지도 몰라.
계절이 지나는 의미가 왠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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