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육아를 걷다

산에서 육아를 생각하다

by 윤신

산에 올랐다.

아니다. 오른다는 거창한 말을 하기엔 작고 나즈막한 산이다. 산속을 걸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을지 모른다. 찌를듯한 매미소리와 온갖 작은 벌레들, 초록 잎 사이의 투명한 햇빛 아래 홀로 한참을 걸었다. 집에서 큰길 한 번만 건너면 발길이 닿는 산이자 거실의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이 산은 소나무가 많다고 하여 송산松山이라 불린다.



참 오랜만에 맞는 고요다.

바스락거리는 땅을 몇 걸음 걷자마자 다른 세상이다. 얼굴에 닿는 공기의 질감조차 다르다. 더 낮고 깊고 조용하다. 내가 언제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고 기저귀를 벗기고 입히는데 진을 빼고 유아식과 사투를 벌였더라. 혼자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거나 일정한 속도로 분침을 재촉하는 시계를 뚫어져라 보며 '죽으면 생이 편하겠지' 생각하던 게 언제더라. 고작 며칠 전의 일이 이미 오래전 낡은 이야기 같다. 혹 다른 차원의 나는 아니었을까. 숲은 푸른 솔내음으로 순식간에 내 손을 잡아끌어 길 건너의 삶을 지워버린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가 힘든 일이란 건 써봤자 손가락만 아픈 일이지만 가장 지친 이유를 대자면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은 왜 하루에 꼭 세 끼를 먹어야 하는가 따위의 관습에조차 불평하며 아기에게 밥을 챙겨주고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끼니를 때운다. 늘 먼지와 뭉쳐 굴러다니는 고양이 털을 청소하고 장난감을 넣고 꺼내는 무한 반복 작업을 하다 아이와 잠깐의 산책 후 목욕 놀이를 하고 자장자장 잠을 재운다. 쇠한 나라의 국력처럼 손가락 까닥할 힘이 없구나 싶다가 잠이 들어 깨면 다시 시작이다. 그 어떤 성과도 노력의 결과도 없이 하루는 매일 반복되고 그 가운데 나는 점점 지쳐간다. 물론 반복의 테마 속 변주는 있다. 아기는 성장하고 찹쌀떡 군 덕분에 오늘처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주 뒤엔 다시 반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잊기로 한다. 산을 걷고 있을 때는 산에 집중하자. 그게 예의다.

초입의 나무계단을 지나 흙을 밟자 산길이 보인다. 사람이 밟고 밟아 흙을 보이며 닳은 길. 나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이다. 그들이 맨들하게 닦은 길을 밟으며 소나무 산에 들어선다. 음악을 들으려 이어폰을 챙겼지만 꺼내지 않는다.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 나뭇잎이 바람이 스치는 소리, 발성이 좋은 매미소리, 발에 닿는 흙의 소리.

온 자연이 내지르는 음악은 이 순간 그 어떤 노래보다 나를 달뜨게 한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하늘과 바람과 흙과 나무와 수많은 생명을 보며 걷는다.



한참 산길을 걷고서야 알았다. 난 길을 잃었다. 이쯤이면 보여야 할 탁 트인 바다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앞서서 걷던 몇몇이 들의 뒷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몇 번의 갈림길에서 아마도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산 중턱 즈음에서 훤히 볼 수 있던 바다는 나무에 가려 간간이 반짝이고 발아래 산길은 좁다래서 한 사람만 겨우 걸을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길인지 버섯과 풀도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여전히 환하고 푸르다. 괜찮다. 돌아가는 길은 알고 있다. 좁게 난 이 길을 다시 찬찬히 되짚어 보고 조금 둘러 가면 될 뿐이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그렇게 말한다. 괜찮다고. 한 걸음씩 가면 네가 가려던 곳에 다다를 거라고.

이왕 처음 본 길을 걷는 김에 더 느려지기로 한다. 바다를 보려던 마음도 접는다. 어차피 저 나무숲 건너 바다가 있을 것이다. 250m 너머로 파도가 찰박일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나의 노력과 마음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한참 길을 걸은 후 산길 초입에 발견한 딱따구리 집을 찾았다. 돌아왔구나.

이제 이 세계를 벗어날 시간, 육아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괜찮다. 지칠 때면 언제든 큰길을 건너 걸어 들어갈 나무숲이 있다.

창 너머 보이는 푸른 산도 그렇다고 대답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고 울고 싶을 땐 잠시 그 세계를 떠나도 좋다. 잠시 잠깐 육아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돌리고 쉬어도 좋을 일이다. 헤매고 넘어지면 좀 둘러 가거나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 숨이 가쁘면 열 걸음 걸을 것을 한두 걸음만 걸어도 된다. 천천히 천천히 나의 속도대로 한 걸음씩 내디디면 된다.

산도 육아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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