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5
6월이다.
오뉴월은 갖가지 꽃들이 만개해 눈도 마음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달이다.
길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 몇 번이고 꽃의 얼굴을 외고 이름을 기억한다. 커다란 하얀 잎 네 장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진 산딸나무 꽃, 온통 노랑이라 고흐를 떠올리게 하는 금계국, 진한 향에 한참 고개를 내밀어 보는 정향나무 꽃, 흰 포도 같은 아카시아꽃, 연분홍 벚꽃을 닮은 애기 사과나무 꽃,
누구라도 알지만 그 누구도 이름을 찾지 않을 길가에 핀 길고 자그마한 들꽃, 콩다닥냉이.
큰 창으로 와락 햇볕이 쏟아지는 통에 에어컨을 켜야 하나 생각했다. 아윤이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 6월의 공기엔 아직 여름의 맛이 배지 않은 데다 간간이 창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꽤 불기도 하고, 해지고 난 어스름에 긴 산책에서 돌아올 때면 쌀쌀한 바람에 몸을 자꾸만 옹송그리고 기침을 하기도 한다. 에어컨의 냉기는 시기상조 아닐까.
'그래, 아직은 아니야.'
그런데 웬걸.
창을 열다 바라본 아가의 머리칼이 온통 땀에 젖어있다. 그만 생각의 꼬리를 끊고 에어컨 리모컨을 찾는다.
애매한 시기의 아리송한 날씨는 잠깐의 외출에도 고민하게 만든다. 아기를 긴 옷으로 갈아입혀야 할지, 카디건을 챙길지, 얇은 이불을 하나 더 챙겨야 할지. 뭐 하나 결정하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우유부단하던 습관은 본성으로 굳어졌다. 만약 아기를 낳기 위해 진통이 올 무렵, 신이 내게 '지금 낳을래, 내일 낳을래?' 하는 선택권을 줬다면 갈등하다 그만 아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신이 '아기를 배에 품을래, 말래?'하고 물었다면 머리를 싸고 고민하다가 늙어 폐경이 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그제야 말할지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 아기를 갖고 싶기도 아니기도 합니다.'
아기 옷을 들었다 놨다, 거즈 이불을 가방에 넣었다 뺏다 하는 사이 함께 장에 가기로 한 자연 언니는 말한다.
"아무래도 길고 두꺼운 옷은 좀 덥지 않겠어요? 그래도 유월은 유월이니까."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 그런가요? 같은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온 신경이 뒷문장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윤이에게 얇은 7부 옷을 입히며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유월은 유월이니까.
뻔한 명제를 닮은 그 말은 이상하게도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월은 유월로 있어도 되고
유월은 유월이기에 유월인
응당 그래야 하는 것에 대한 경이,
그것이 그것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사.
지속적인 반복으로 인해 익숙해진 계절의 감각.
산뜻이 옷을 갈아입은 아윤이를 데리고 언니와 집 바로 옆에 이어진 샛길로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장으로 향했다. 홍어집, 분식집, 묵국수 집, 돈가스집, 과일집, 꽃집. 간이 천막 아래 온갖 집이 다 들어섰다. 간단한 점심 요기를 하고는 두 손 가득 무겁게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샛길 따라 늘어선 벚꽃나무엔 진작 버찌가 열려 검붉게 익어가고 있다. 입이 시커멓도록 따먹던 할머니 집 아래 벚꽃나무는 건강할까. 지금의 버찌는 그때의 버찌와 같은 맛일까.
봄꽃은 지고 그 자리에 열매를 맺고 어느새 여름꽃을 맞이하고 있다.
장터에서 사 온 밀떡을 하나 떼내어 오물거리며 유리컵에 찬물을 따른다. 투명창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에 건조한 소금기가 실렸다. 송곳 땀을 닦으며 올해는 유난히 더울 거라는 말을 기억해낸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겠지.
아직은 봄은 아니지만 여름도 아닌,
유월은 유월이니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