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첫 놀이터 친구

우리 때랑 다르네, 라는 뻔한 말은 사실이었다

by 윤신


"저 이제 놀이터에 못 와요."


밀애의 끝을 알리듯 9살의 남자아이는 발끝을 땅에 차며 고백했다. 이름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처음 보는 아이. 바람 좋은 날 아윤이와 찾아간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지 5분도 채 안 되는 아이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다. 그래선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관계의 시작에서 대화란 계란빵의 계란 같은 존재다. 맞장구에 불과하거나 어느 질문에나 갖다 댈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더라도 건네는 편이 낫다.



"응? 왜?"

"내일 이사 가거든요. 그러니까 여기도 마지막이에요."


말투에 서운함이랄까 아쉬움이 섞여 들어 그네 위를 둥둥 떠다닌다. 아이는 놀이터에게 인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대놓고, '놀이터야, 나 오늘 마지막이야. 그러니 기다리지 마.' 따위의 말을 하기엔 훌쩍 커버린 아홉 살 인생이니까.


우린 그 후로도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 아이가 이사 가지 않았다면 나의 최연소 똘똘이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박식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호주 산불, 기상 이상 현상,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 Covid19, 터키 지진, 유튜버 뒷 광고 등 2020년의 사건들을 줄줄이 꿰질 않나 호주의 회색 토끼 전쟁 현상에 대해 말하지 않나 요즘 아홉 살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사는 걸까. 열두 살까지 뾰로롱 꼬마 마녀에 빠져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무안해졌다. 어린이 기자의 세계 뉴스를 듣는 사이 불쑥 어린 여자아이 두 명이 다가와 그네를 탔다. 주제가 순식간에 바뀌는 순간이다. 우리의 기자이자 놀이터 친구가 그 둘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하는 것을 아윤이와 난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사실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었지만 누군가의 정성스런 이야기에 무작정 귀를 덮어버릴 순 없다. 그러면 역시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 관계나 대화에서 경청은 그럼 계란빵의 빵 정도에 해당되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는데 문득 짧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그네에 올라 우리 쪽을 보며 말한다.



"오빠, 나 지옥으로 보내줘."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응? 어디로? 요즘 여덟 아홉 살의 사고는 어떻게 채워진 거야? 눈을 뻐끔 거리며 정지한 사이 놀이터 친구는 그네로 가 흔히 말하는 꽈배기를 돌린다. 그리곤 무심히 대답한다.

"응. 알겠어. 하지만 네가 착하게 살았으면 천국으로 갈 거야."

여자아이와 그네는 혼연일체가 되어 빙그르르 돌고 내 머릿속도 핑핑 돌았다. 이 무슨 쾌락과 종교가 넘나드는 대화인가. 여덟 아홉 살은 이토록 고차원적인 시기였던가. 어디 가서 그 나이 또래 아이에게 '그랬쪄요?' 같은 말을 해선 안 되겠어. 매일 배우며 산다.

아윤이의 까만 눈이 빙빙 도는 그네를 보며 반짝이며 빛나고 나름의 생의 심판 역할을 하던 작은 친구는 이내 돌아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이였던 것처럼, 여기가 원래 제자리였던 것처럼. 그리고는 또 나로서도 궁금한 물음을 한다. 작은 돌멩이가 잔잔한 물에 나이테 같은 파문을 만든다.

"그런데 이제 막 만 한살이라는 이 아기가 나처럼 아홉 살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요?"



어렵다. 나와 비슷한 아홉 살(유전적 문제)을 보낼까 너와 비슷한 아홉 살(시대적 문제)을 보낼까. 모르겠다. 이제 막 이리 쿵, 저리 쿵 걸음마하는 네가 아홉 살이 되면 그때의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 역시 모르겠다. 결국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같구나. 아니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는 더 많은 것들을 확신했을지도 몰라. 느닷없는 만남과 대화에 즐겁고도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잇는다.

하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시계가 지금은 아기가 낮잠 잘 시간이라 이른다. 조만간 다시 자라날 도마뱀 꼬리를 자르듯 생각을 끊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세 개 사서 계속 목이 마르다는 아이에게 건넸다.



"네가 좋아한다는 환타 여깄어. 이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재밌게 놀다가."



역시나 연애 드라마 같은 대사를 남기고 이별 선물로 오렌지 환타 세 개를 건넸다. 아기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벌써 스멀스멀 생각의 꼬리가 자라난다. 그 아이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놀이터를 그리워할까. 그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쯤 유년 시절에 살던 동네를 찾아가게 될까. 아윤이의 유년시절은 어떤 감정의 색으로 남게 될까. 역시나 글쎄.

내년(대개 가늠할 수 없다)을 생각할 때처럼 어림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다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내 아가의 유년이 반짝거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와 그라는 거, 부모가 가족의 하루를 닦고 매만져야 아이의 유년의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우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나저나 문득 궁금하다.

이사 잘했겠지?

우리의 첫 놀이터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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