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우리의 첫 번째 곡

'그 언제보다 지금이, 그 누구보다 우리가'

by 윤신


중고마켓에서 산 마코토 오조네와 야론 허만의 피아노 CD와 빌리 조엘의 바이닐을 좌륵 식탁에 펼쳐두곤 설거지를 합니다. 그저 재킷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 자유로이 오르내리는 음을 상상하고 그 속에 유영하는 자신을 그립니다. 아기가 낮잠에 들면 들어볼 생각이에요. 바쁜 하루의 빈틈인 한두 시간을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에게 아기를 맡기고 달그락 설거지를 하던 중 피아노 소리가 들립니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예요. 내가 언제 CD를 넣고 오디오를 켰던가 생각하다 이내 웃습니다. 이건 분명 그의 곡이거든요. 그가 이 곡의 작곡가는 아니라도 내겐 그의 곡입니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들어온 연속적인 음이에요. 소절과 소절 사이의 쉼, 음이 이어지는 길이, 음이 늘어지는 구간, 잠깐의 그의 호흡, 점점 고조될수록 격앙되는 그의 등.

나에게는 그 모두가 악보에 함께 있어요. 후렴 가까운 부분에 들어가면서 그가 건반을 부드럽게 누를 때 이 곡에 조용히 허밍을 하며 따라 부르기 좋아하지요. 음흐으음, 흐으음. 그릇이 닿는 손에 리듬이 생깁니다.



가만히 피아노에 귀를 기울이며 그릇을 물에 헹구는데 문득 나직이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사이사이 맑고 높은음이 끼어듭니다. 한 번이 아니에요.

톡, 톡, 톡. 톡톡톡.

비눗방울을 닮은 피아노 음이 불규칙적으로 익숙한 곡 사이에서 터집니다.

톡톡, 톡, 톡.

설핏 웃음도 같이 터집니다.

네모나고 낮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을 그와 아기를 그린 탓입니다.

몇 개의 음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완전 새로운 곡이 되었습니다. 어딘가 애연하던 분위기의 단조의 곡이 생뚱맞고 장난스러운 장조가 된 것처럼요. 이게 다 아빠 따라 희고 검은건반을 무작위로 누르는 작고 통통한 손가락 덕분이지요.



더 이상 CD나 바이닐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어떤 곡도 지금의 곡보다 내 마음에 닿을 순 없을 테니까요.

'그 언제보다 지금이, 그 누구보다 우리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 익숙해져 버려 놓치고 있던 마음이에요. 손에 물기를 탁탁 털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가려는데 곡이 끝납니다. 너무 아쉬워요. 내일은 그에게 부탁해 '그와 아윤이의 곡'을 들려 달라고 부탁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아윤이에게도 부탁해야겠군요. 그들의 곡, 아니 우리의 곡을 연주해 달라구요. 그리곤 녹화해서 두고두고 저장할 거예요. 그와 아기와 내가 함께인 소리와 시간을 꼭꼭 모아서 CD나 바이닐처럼 언제고 꺼내 듣고 볼 수 있게요.



그리고 이름은 이렇게 붙일 겁니다.

#우리의 첫 번째 곡이라고 말이지요.




_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해, 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