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아기의 음식 저장소
설거지하는 나를 두고 그가 입을 실쭉이며 이야기한다. 익숙한 저 입놀림과 웃음. 어디선가 보고 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꼭꼭 담고 있다가 입을 떼기 시작할 때의 것이다.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낼 모양이다.
"혹시 그거 알아? 사람이 왼손잡이가 있듯이 다람쥐도 왼볼잡이 오른볼잡이가 있대. 도토리를 저장할 때 저마다 편한 볼을 쓰는 거야."
말하면서도 그의 입꼬리가 배싯배싯 움직인다. 이미 머릿속에서 한쪽 볼이 볼록한 다람쥐를 상상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귀여움에는 나보다 이 사람이 더 약하다. 엉덩이를 둠칫거리며 어정쩡한 춤사위를 벌이는 아윤이를 보면서 심장이 아프다며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는 그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고 하던데 만약 세 번 무릎을 꿇는다고 하면 그중 하나는 분명 '자식이 귀여워서'일 것이다. 아니면 그냥 '자식 때문에'던가.
아이는 요즘 밥을 씹지 않고 물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누굴 닮았는지(모든 엄마들의 레퍼토리) 식욕이나 음식에 대한 애정이 없어 좀처럼 밥을 맛깔나게 먹는 일이 없다. 호되게 조련받은 한 마리 물개로 빙의해 현란하게 손뼉을 쳐 정신을 쏙 빼놓으면 겨우 한 숟갈을 쑤욱 집어넣는 게 일상다반사다. 또 그렇게 씹다가 넘기면 다행이다. 죄 뱉어내거나 입안에 가득 문채로 장난감이나 자기 세상에 열중이다. 그 상태에서 더 먹이려 숟가락을 드미는 것은 금물. 입안 가득 저작운동으로 잘게 빻인 당근, 양파, 고기, 밥이 침에 섞인 채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기 싫다면 말이다.
그러다 간혹 볼에 모인 음식을 씹기도 하는데 저장하는 볼은 늘 정해져 있다. 바로 왼볼.
좀처럼 멍이 가시지 않는 왼볼.
어째선지 넘어질 때도 매번 왼쪽으로 넘어지는데 안타깝게도 늘 얼굴을 다친다. 신나게 붕붕카를 향해 돌진하다가 우다다 쿵, 스티커를 쥐고 춤을 추다가 휘릭 콩. 왼볼이 남아날 날이 없다. 이것도 왼볼잡이라 해야 할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크면 낙법부터 가르쳐야겠단 나름의 실리적인 생각을 한다.
어쨌든 재미진 이야기는 혼자 알고 있기 아쉬운 법.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신나서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내 입꼬리도 씰룩였던가, 아기 새처럼 조그만 주먹밥을 암암하고 입으로 받아 왼볼에 저장하는 아이가 떠올랐던가 어쨌던가.
하지만 눈을 빛내며 함께 귀여운 상상을 하리라는 기대는 친구의 한마디로 어긋났다.
"뭐, 그러다 결국 도토리든 뭐든 양볼에 가득 찰 거 아니야?"
쨍그랑.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내 포인트는 그게 아니야. 한쪽 볼을 자주 쓰는 한볼잡이 다람쥐를 상상해 보란 말이야. 하아. 상처 받았다. 이게 뭐라고. '오른볼잡이', '왼볼잡이' 다람쥐에 대한 로망(갑자기 웬 로망)을 깨트리다니. 네가 다람쥐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말이야. 다람쥐도 때로 적당히 한쪽으로만 물고 싶을 때가 있을 거 아니야. 왜 나의 '왼볼잡이 다람쥐'에 대한 로망(그러니까 갑자기 무슨 로망이)을 무너뜨리는 거야. 마음속으로 우다다 쏘아붙였지만 시크한 척 쿨한 척 눈짓했다.
다람쥐도 가끔 한쪽으로만 도토리를 물고 싶을 때도 있어.
물론 다람쥐의 마음 따위 나도 모른다. 다람쥐와 도토리, 혹은 왼볼잡이나 오른볼잡이따위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때로 인생에서 작고 사소한 것을 상상하고 즐거워하는 재미는 무시할 수 없다. 키득거리며 나누는 작은 공상은 그 어떤 이야깃거리보다 삶에 영감과 빛을 주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늘 한쪽 볼이 볼록한 다람쥐를 상상하는 일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단 말이다, 이 친구야)
오늘 점심밥은 배춧국의 모양을 띈 밀푀유 나베였는데 조금씩 잘라 아윤이 입에 넣은 게 또 그만 볼록해졌다. 역시나 자꾸만 입에 물고 씹거나 삼키지 않는 탓이다. 입에 오래 물면 충치가 많이 생긴다는 말에 조마조마한 건 나뿐이다. 아이는 그저 손톱 달 같은 눈을 하고 생긋 웃으며 손에 쥔 인형을 조물 거린다.
왼쪽 볼만 또 뽈록한 채로.
그렇다. 아윤이는 왼볼잡이다.
도토리를 한쪽 볼에만 저장하는 다람쥐처럼(상상하며 또 흐뭇해한다) 나의 아가도 왼볼에만 저장한다. 푸르스름 옅게 멍이 든 왼볼로만 자꾸 음식을 저장하는 아기 다람쥐. 엄마로선 속상하지만 상상하자니 입꼬리가 달싹이는 건 또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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