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채가 없어도 홀로 밝게 빛나는, 190929
김제동이 말했다.
"우리는 한때 뒤집고 기어 다니기만 해도, 심지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던 사람들입니다."
정말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한때 아기였다. 존재 자체로 빛나던 사람들이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작은 충격을 받았다.
난 단 한 번도 내가 해낸 일에 완벽히 만족한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고 늘 부족한 자신을 채찍질했다. 존재 자체로 빛나거나 소중하다는 말은 사기꾼이나 하는 달콤한 속임수라 생각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책략 같은 거라고.
또 '그대로도 괜찮아.'따위의 말은 그저 우울에 빠진 이에게 건네는 값싼 위로일지도 모른다고,
난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은 꼬리를 문다.
내가 나를 빛나고 소중한 사람이라 여기고 아낀 적이 언제일까.
그랬던 적이 있긴 할까.
나 자신을 칭찬한 적이 언제일까.
타인에게 칭찬받은 적은 또 언제인가.
결국 태초의 사랑마저 의심한다.
갓 태어난 나를 우리 엄마, 아빠는 진정 사랑했을까.
아빠는 자지러지듯 우는 나를 몇 번이고 이불에 던졌다고 한다.
그는 미숙한 인간(그의 뒷이야기를 하자면 그는 세상 모든 나쁜 아빠의 표본이었습니다. 내게는 그랬습니다)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엄마도 미웠다.
약하고 작은 아기를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원망했다.
아기를 낳아보니 실로 더 그렇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유리가 있다면 아기의 몸이 그것이지 않을까. 팔도 다리도, 모든 신체가 유약하다.
아윤이가 발끝까지 힘을 주며 온 힘을 다해 젖을 빨 때,
얼굴이 붉어지고 입을 오므리며 노오란 똥을 쌀 때,
피곤할 때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 잠투정을 하다 끔벅이며 눈을 감을 때, 난 줄곧 속삭인다.
"우리 아가 잘한다. 애쓰고 있구나.
아고, 이뻐라. 잘하고 있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만 해도 너무 장하고 예쁘다.
존재 BEING 만으로 귀하고 사랑스럽다.
다시 꼬리를 문 생각으로 돌아간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아가였을까.
분명 어린 아기였던 나를 엄마도 아빠도 예뻐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방식은 얼핏 다르겠지만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날 사랑한다고 확신한다.
어렸을 때야 친엄마를 찾겠다(친엄마 맞습니다만)고 터진 울음을 쥐고 집 밖으로 뛰쳐나간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젠 안다. 작은 핏덩이를 낳아본 지금은 확실히 안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나와 동생을 지키고 기르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을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쏟았을 것이다.
굳이 그 사랑에 확인해야 할 이유는 없다.
김제동의 말처럼 뒤집기만 해도 박수와 사랑을 받던 우리다. 그 애틋한 소중함을, 한 생명을 두 손으로 품어보니 더 절절하게 알겠다.
나 자신 역시 의심할 필요가 없다. 나의 엄마가 청춘과 전신으로 키운 한 생명이다.
또 박수와 사랑이 곁에서 들리지 않는다면 또 어떠랴. 갈채가 없어도 별은 그 자리에서 밝게 빛난다.
문득 떠오른 김제동의 한 마디가 품에 안긴 아윤이를 만나 온갖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생각은 모든 이를 소중하게 만들었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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