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언제 벌써

몇 달 전에 쓴 일기

by 윤신


아윤이는 만 18개월이 되었다.

열여덟 달이라는 시간, 그러니까 왼쪽 눈 와잠 아래 진한 잔주름이 새겨지는 동안 아이는 훌쩍 컸다. 제 키보다 높은 미끄럼틀에서 날듯이 미끄러지고 사물과 자신을 인지하며 어른의 말을 대부분 이해한다. 내 몸무게가 고작 500g 늘고 주는 사이 아이는 어느새 첫 숨을 울음으로 뱉은 날보다 세배 무거워졌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편의점에서 콩순이 장난감을 마주 보고 주저앉아 꼬막손으로 바닥을 탁탁 내리치고는 '아자, 아자(앉아, 앉아)'라며 함께 장난감을 감상하자는 아이, 공주가 그려진 분홍신을 까닥이며 발을 까불고서 아빠가 부르는 노래에 비슷한 음정으로 따라 부르는 아이를 찬찬히 바라본다.

어느새 나의 아기가 아이가 되었을까.

장난감과 옷이 철마다 바뀌고 사라지는만큼 나는 아이의 아기 시절을 잊는다. 품이 넉넉한 옷처럼 내일의 준비만을 한다. 오로지 아랫배에 그어진 붉은 선만이 그날의 묵직한 어깨 통증과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뱃속의 표식이 되었다.



아이는 3월부터 어린이집에 간다.

간다고 하기에도 뭣한 게 여태 사 일을 갔는데 첫째 날은 30분, 둘째 날은 19분, 셋째 날은 10분, 넷째 날은 8분 남짓의 분分동안 어린이집에 다녀왔다. 적응하기 위해 짧은 시간을 있는다지만 어째 시간이 점점 준다. 그리고 짧아지는 시간의 반비례로 불안해진다. 괜찮은 걸까. 아직 너무 어려 무리인 건 아닐까.

어린이집 근처를 서성이며 정답 없는 질문과 자책을 쏟아내고 몇 분 뒤 두 팔을 벌려 나를 반기는 아이를 힘껏 안는다. 아가, 잘 다녀왔어. 엄마 여기에 있어. 늘 가까운 곳에 있어.



사실 18개월은 엄마들이 시팔시팔해서 시팔 개월이라는 무시무시한 개월 수다. 아이의 자아개념이 강해져 자신이 원하는 게 늘어나고 다양한 행동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 아기에서 아이로 성장하는 시기. 한마디로 말하자면 떼와 투정이 느는 시기다. 그것도 엄청나게.

밥 대신 우유만 마시겠다고 떼, 응가하고 기저귀 갈기 싫다고 떼, 지나가는 모든 가게에 들어가겠다고 떼, 언제는 안아달라고 떼, 이제는 내려놓으라고 떼, 콩순이를 보겠다고 떼, 놀이터에 가자고 떼, 가기 싫다고 떼, 안 자고 더 놀고 싶다고 떼, 떼, 떼, 떼.

이건 뭐 단순한 칭얼이 아니라 끝장을 보겠다는 듯 눈물까지 뚝뚝 흘려가며 전력을 다해 운다. 한 번은 커다란 개를 못 만지게 막아섰다고 길거리에서 드러누워 울기까지 했다. 한참 서러운지 입을 앙다물고 팔다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슝슝, 휘두르는 팔다리를 돌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이번엔 이를 악물고 태연한 척 표정을 한 나를 본다. 아니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있는 힘을 다해 평정을 지키려 애썼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아무래도 감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계속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일은 너무나 지친다. 아이가 떼를 쓰고 버티는 시간은 포물선이 큰 곡선이기 때문이다. 지나는 타인의 직선과 달리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기다란 곡선. 저 유명한 시팔 개월이 다른 달보다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기저귀 갈기 싫다고(심지어 그 행위는 내가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활처럼 휘는 아이를 보며 의문했다. 정말 백일의 기적처럼 십구 개월이면 자신의 의지가 굽혀지듯 떼가 뚝 그치는 기적이 일어날까. 조금이라도 내 의도가 선선히 통하는 날이 올까. 그 언젠가를 막연히 바라면서도 동시에 진정 그날을 기다리는 걸까 다시 자문한다. 시간이 사라지듯 지나가길 바라는 걸까. 아, 모르겠다. 아이의 떼는 어른의 마음보다 더 투명하고 솔직하다는 것만 알겠다.



지금은 밤 열 시.

내일 아침 열 시쯤을 상상한다. 우린 근처 놀이터를 어슬렁거리다 결국 (나의) 목적지인 어린이집을 향할 것이다. 그 앞에서 18개월의 나의 아기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떼를 쓰겠지. 그 떼는 너무나 아릿하고 슬퍼 난 차마 디딘 발을 떼기가 힘들겠지만 병아리가 물을 마시듯 잠시 하늘을 보는 시간만큼의 시간만 지나고 나면 아이는 금세 나와 두 팔을 벌려 날 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린 또 새로운 하루를 함께 만들 것이다. 어느 순간 하나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우-우- 빠빠빠빠빠(아윤이가 좋아하는 멜로디)'를 함께 흥얼거리며 눈을 맞출 것이다.


이 모두 '벌써'라는 말만큼 아쉬운 게 없다는 걸 아는 이유다.

붉게 울던 나의 아기가 ‘어느샌가' 나보다 훌쩍 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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