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울 때면 태어날 때 얼굴이 된다

아이의 우는 얼굴

by 윤신


낮잠을 버티며 자지 않더니 결국 오후 6시쯤 울음이 폭발했다. 어르고 달래도 자지 않겠다고 이불을 박차고 나가던 정오의 패기는 어디 가고 눈 밑이 빨간 아기 새처럼 삐익삐익 울었다.

눈물도 똑똑 떨어트려가며 입을 벌려 울었다. 낮잠의 부재가 이유라고 차마 고 작은 머리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서럽게 흐득흐득 울었다.



아윤이는 울 때면 태어날 때 얼굴이 된다.

미간에 힘을 딱 주고 눈을 꼭 감고는 콧구멍을 크게 벌렁이며 입을 한껏 벌려 운다. 온 얼굴에 힘을 주며 우는 아가를 보며 어쩐지 난데없지만 이런 얼굴로 우는 것도 기한(그러니까 나이 제한 같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군다나 내 앞에서는 더더욱.



아이는 태풍과 돌풍의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며 부끄러움을 알고 몇 개의 가면을 만든다. 우는 일이 부끄러워지고 약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만화영화 주제곡으로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가사까지 있을까.

외롭고 슬프면 울 수도 있지 뭐 어때 싶지만 나 역시 이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툭하면 그렁해지는 눈물을 뒤돌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음은 지금 아윤이처럼 오만상을 쓰고 목놓아 울고 싶어도 끅끅거리며 참은 적 역시 한두 번이 아니다. 참 많이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유는 죄 기억나지 않는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지만 어쩌면 진화론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잊어버려야만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어쨌건 아윤이가 태어날 때의 얼굴로 울 수 있는 건 역시 기한이 있겠다.



억수같이 우는 아가를 보며 바랐다.

부디 삶이 네게 관대하기를,

슬픔보다 기쁨의 눈물을 자주 흘리게 되기를.


또 바랐다.

네 감정을 그대로 표출해 울고 싶을 땐 자유로이 울 수 있기를, 그런 네 곁에 내가 있기를.

(하지만 역시 되도록이면 울 일없는 삶을 사는 게 낫지. 금방 철없는 마음이 되어버린다.)


그리곤 또 바랐다.

일단은 우렁차게 우는 우리 아가,

매일 곤한 낮잠에 들기를.



엄마는 늘 바라고 기도하는 존재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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