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부부생활을 위해
힘든 육아는 부부를 싸우게 한다.
원래는 '지치게 한다'고 적으려던 참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처럼 점점 서로의 바닥까지 치닫지만 영원히 무승부일 경기의 링 안이라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솔직해지자 싶었다. 링 안에서 벌어지는 날카로운 신경전과 몰아세움을 못 본 채 할 수 없었다. 과연 아기를 키우며 단 한 번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서로를 할퀴지 않는 부부가 있을까. 그래서 지침의 끝, 날 선 신경의 말단이 이르는 자리가 어딘지 바르게 적고 싶었다. 또 그럼에도 괜찮다고, 목소리를 크게 내고 가자미눈으로 쏘아봐도 그럴 수 있다고, 당신의 잘못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정작 중요한 건 '싸운다'는 행동보다 '힘든' 상태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 주위엔 근 한 달 혹은 그 너머 동안 우울이 감정 저변에 깔려 있었다. 잠시 행복이나 즐거움이 때때로 수면 위로 올라온 적도 있지만 무표정한 우울이 말끔히 지워진 날은 없었다. 물에 퍼지는 잉크처럼 가장 깊은 곳에서 넓게 천천히 색을 입혀갔다.
그건 딱히 말하기 힘든 권태와 회의감, 막연함과 공허가 섞인 가벼운 슬픔이었다. 가족과 동물원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내다 돌아온 저녁 식탁 앞에서 물밀듯 찾아오는 한숨이나 평소라면 으레 건넬 배려는커녕 양보조차 않는 좁은 마음이기도 했다. 또 이 지독한 반복이 끝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어깨에 맨 9.3kg의 무게였다.
그런데 그 우울은 나만 지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나에게만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상냥하다.
물론 그 말이 그를 온전히 대표한다거나 다른 결점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본 상당수의 사람보다 훨씬 상냥하고 따뜻하다. 예의는 또 어떤가. 기본적으로 그는 타인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고 인사나 기본 예의는 인간의 미덕이자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당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기보다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쪽에 속한다. 그런 그가, 그런 따뜻한 그가 요즘은 회사에서 '쌈닭'이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평소라면 별일 없을 대화에도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낸 것이리라. 감정이 치미면 입술이 살짝 떨리면서 콧구멍이 커지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 모습은 쌈닭의 얼굴보단 불퉁한 너구리의 것에 더 가깝다.
어쨌든 그가 가진 화의 발화점이 낮아졌는지 리밋 스위치가 꺼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거기에 육아와 나의 우울이 영향을 끼쳤으리란 거다. 충분하지 못한 잠과 풀리지 않는 피로, 좀처럼 찾기 힘든 여유-그 모든 것의 반복, 자신의 부재감. 거기에 예민하고 지친 내가 포함되어 있겠지.
그 벌렁이는 콧구멍 속에.
아기를 키우다 보면 꼭 한 번씩, 아니 시작이 어렵다고 무조건 그 이상은 싸운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그러지 않을 거라 여긴 적은 없지만 딱히 그럴 거라고도 생각한 적 역시 없다. 지금껏 잔잔했다고 앞으로 물결이 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언제 어디서 시작할지 모를 바람의 시작을 예측하기 힘든 탓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통의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다투고 침묵하고 눈을 피하는 시간 말이다. 그리고 그 다툼의 이유는 하도 사소한 것이어서 말하기가 남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원래 그렇게 보잘것없이 작아 보이는 일과 배려일수록 우린 더 상처 받고 다친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큰 생채기를 낼 수 있는 법이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괜찮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단 조건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그 상처가 너무 커서는 안되며 둘째, 상처를 줬다면 잘 아물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다. 살짝 긁힌 상처는 며칠이면 살이 붙고 아물지만 퍼렇게 든 멍은 일이 주가 가고 부러진 팔은 몇 달이 걸린다(어떤 상처는 흉터로 남아 평생 가기도 한다). 상처가 나을 수 있도록 약을 발라주고 호- 불어주는 건 당연하다. 내가 낸 상처 아닌가. 혼자서 넘어져 우는 아기에게도 달려가 안고 쓰다듬어주는데 내가 넘어트려 다친 사람을 일으켜주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쓰며 생각한다. 이건 그 무엇도 아닌 다짐에 가까운 글일지도 몰라.
아무것도 모르고 흙이든 고양이 꼬리든 다 입으로 넣으려는 아기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다. 먹이고 씻기고 노는 것 하나에서 열까지 손이 필요한 데다 인성이고 애착이고 살펴야 할 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그뿐인가. 모든 시간을 아기에게 쏟는 통에 '나'는 사라지고 무한대의 피로만 쌓여간다.
하지만 그 가운데 불변의 진리가 있다.
이 시간은 분명 지나갈 것이라는 것.
언젠가는 지금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온전히 그와 아기와 누려야 한다는 것.
다행히 나보다 1% 더 상냥한(화해하고 나서 합의 본 사항이다. 그의 상냥함은 나의 것보다 딱 1% 크다) 그 덕분에 우린 몇 번의 아슬한 줄타기를 끝까지 걸어냈다. 또 앞으로 얼마나 더 길고 높은 줄이 있을진 모르지만 아마 그 줄을 걷는 시간은 우리가 함께 다독일 시간일 것이다. 물론 그보다 먼저 당장의 육아 우울과 피로를 슬기로운 부부생활로 이겨낼 일이다.
자, 그러려면 일단 피로를 풀어야지.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아이 곁으로 가야겠다.
우리가 언성을 높일 때면 그만하라고 함께 큰소리로 옹알대던 아가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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