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꼍잠과 나비잠

20200710,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잠은 없다

by 윤신

사로잠 ; 마음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잠
굳잠, 귀잠, 쇠잠, 한잠 ; 아주 깊이 든 잠
돌꼍잠 ;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자는 잠
개잠 ; 개처럼 다리와 팔을 오그리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잠
나비잠 ; 아기가 나비처럼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촛대잠, 고주박잠, 말뚝잠 ; 꼿꼿이 앉은 상태로 자는 잠
고양이잠(괭이잠), 노루잠, 토끼잠 ;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면서 자는 잠
꽃잠 ;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하는 잠
헛잠, 꾀잠 ; 거짓으로 자는 체하는 잠
선잠, 겉잠, 수잠 ; 깊이 들지 못하는 잠, 충분히 자지 못한 잠
다방골잠 ; 늦잠
그루잠, 개잠, 두벌잠 ; 깨었다가 다시든 잠
새우잠 ; 새우처럼 몸을 꼬부리고 자는 잠
늦잠 ; 아침 늦게까지 자는 잠, 아침잠
꿀잠, 단잠 ; 기분이 좋은 상태로 깊이 든 잠, 달게 자는 잠, 자는 도중에 깨지 않고 깊이 자는 잠
발칫잠 ; 남의 발치에서 자는 잠
밤잠 ; 밤에 자는 잠
낮잠 ; 낮에 자는 잠, 오수, 오침, 주침
새벽잠 ; 새벽녘에 든 잠, 새벽에 자는 잠
여윈잠 ; 흡족하지 못한 잠, 깊이 들지 않은 잠
이승잠 ; 이 세상에서 자는 잠이란 뜻으로 "병중에 정신을 못 차리고 살아 있으면서 계속해서 자는 잠
일잠 ; 저녁 일찍 드는 잠
초저녁잠 ; 초 저녁에 일찍 드는 잠
풋잠 ; 잠이 든 지 얼마 안 된 옅은 잠
한뎃잠 ; 한 데에서 자는 잠, 노숙
쪽잠 ; 짧은 틈을 타서 불편하게 자는 잠
잘치잠, 칼잠 ; 좁은 데서 여럿이 모로 끼어서 자는 잠
사로잠 ; 생각이 많아 들지 못하는 잠
멍석잠 ; 멍석 위에서도 편하게 자듯이 아무 데서나 자는 잠
도둑잠 ; 윗사람이나 감독관 몰래 자는 잠



지난밤 내내 선잠을 잤다.
곁에 있던 아이가 단잠 대신 고양이 잠을 잔 게 이유다. 거의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우는 아기를 토닥이며 비몽사몽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갔다. 꿈속에선 자유연애를 하는 스무 살이다가 깨면 얼굴이 붉도록 우는 아가를 달래는 엄마가 되고 다시 꿈결에선 청춘 드라마를 찍다가 눈을 뜨면 목 늘어난 노란 티셔츠를 입은 아줌마가 되어 있다. 오가는 꿈과 현실의 반복에 결국 꿈속 스물의 나는 애 딸린 유부녀인 것을 비밀로 하고 연애 중인 몹쓸 여자가 되어 있었다. 발칫잠을 잔 것처럼 개운하지 못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잠보다 개인적인 게 있을까.
사소설만큼이나 은밀하고 신발의 밑창처럼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게 바로 잠의 영역 아닐까. 꿈과 잠자는 자세, 수면의 깊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난 대개 누군가의 생각을 듣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독자적인 개인성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타인과 다른 자기만의 화법, 필법, 생의 태도, 물건의 취향, 경험에 흥미를 느낀달까. 그런데도 왜인지 지극히 개인적인 '잠'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좋아하는 이의 취향을 물어보면서도 그의 생활 중 밥만큼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잠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어떤 자세로 잠드는지, 하루 평균 얼마큼의 시간을 잠에 할애하는지, 깊은 잠에 쉬이 드는지, 주로 어떤 꿈을 꾸는지.

타인의 잠자는 모습을 몇 초 이상이라도 본 건 침대 광고(그 또한 흉내에 불과하지만)뿐이라 대충 모두 저렇게 자겠지 하고만 지레짐작했다. 결혼하고 나서야 그의 자는 모습을 보며 고작해야 '키 큰 사람은 침대도 길어야겠구나' 정도의 생각을 한 게 다다. 어쩌면 잠은 지나치게 내밀한 탓에 자기의 것을 침실에 남겨 두고 공유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린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 불가결 요소인 서로의 잠을 그다지 알지 못하는 거겠지. 그것만은 건드려선 안 되는 극도의 사적 영역이라며.


한 사람의 잠든 모습을 이렇게 오래도록 정성스레 바라본 적이 있을까. 가지런하고 길게 뻗은 속눈썹을 세어도 보고 둥글고 작은 콧방울에 뽀뽀도 하고 땀에 젖은 이마를 계속 쓸어 올리며 아가의 숨소리에 내 숨을 맞춰도 본다. 사람의 잠이라는 게 이토록이나 평온하고 달콤한 것이던가. 고요한 시간의 흐름이 깨질 새라 모든 걸음은 깨금발이 되고 음악의 볼륨도 낮게 내린다. 아기의 잠을 지키는 문지기가 된다.
그러다 혹 아윤이가 눈을 뜨거나 칭얼거리면 등을 도닥이고 나지막이 노래한다. 가사는 날에 따라 마음에 따라 늘 다르지만 기본은 이렇다.
자장자장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사랑한다.
어화둥둥 어화둥둥.


아윤이의 잠을 조곤조곤 관찰하다 그에 대한 단어를 하나씩 알게 되었다. 잠을 표현하는 단어가 이렇게나 많은 것에 놀라다가 이내 '당연한 말인가' 싶었다. 우리 가족 세명만 보더라도 잠자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잠은 없다, 라는 말은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


처음 찾은 단어는 '돌꼍잠'과 '나비잠'이다.
잠을 자면서 빙그르르 구르고 견상 자세(요가 자세중 하나)를 취하더니 엎드려 자고 또 구르길 반복하는 아윤이를 보며 찾은 단어가 '돌꼍잠'.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곤 만세 자세로 만사태평히 자는 모습을 보고 찾은 단어는 '나비잠'.

그렇게 찾은 단어들이 하나둘 꼬리를 물어 하나의 긴 목록이 되었다. 책을 모으듯 글과 단어를 모으는 것 역시 쏠쏠한 하나의 재미가 되어버렸다.
익숙한 낮잠, 새우잠, 단잠, 쪽잠에서부터 낯선 풋잠, 일잠, 개잠, 두벌잠, 사로잠 등등.


엄마가 제 아기에게 바라는 것은 크게 딱 두 가지다.
잘 먹고 잘 자는 것.
그 둘만 잘해도 '오구 오구 내 새끼'하고 세상 최고 효녀 효자가 된다.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모든 엄마의 바람이다. 나라고 다를까. 푹 자고 일어나 방긋 웃는 아윤이는 늘 설렌다. 예의 그 딩딩 부은 얼굴로 눈도 제대로 못 뜨며 입을 헤 벌리고 웃는 그 사랑스러움을, 가끔 눈물 날 정도로 기특한 그 모습을 어찌 설명할까.


이미 늦은 밤이다.
아윤이는 이미 단잠에 들었고 나의 밤잠은 곧 시작할 것이다.

아가, 우리 아가.
넓고 깊게 잘 자고 내일 우리 또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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