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신 Jun 06. 2022

오월말의 대화

A와 B와 C


오월 말의 하늘과 알 수 없는 풀들과 바닷바람이 둘러싼 옥상에서 셋은 수다를 떨었다. 푹한 늦봄의 수다였다.  


A 치매라는 말보다 다른 어감의 단어가 있으면 좋겠어. 말 자체가 주는 느낌이란 게 있잖아.

B 그렇지. 그럼 꽃병 어때? 기억이 꽃처럼 지고 마니까. 아니면 기억병? 흠, 왜 병자가 끝에 붙고 마는 걸까. 별로다.

C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는 의미를 넣는 건 어때? 모든 걸 잊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A 그렇네.

B 어른의 몸으로 다시 유아기로 돌아가버리면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울까.

C 과연 그럴까? 오히려 지난 기억을 잊음으로써 더 홀가분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B 그럴까?  

C 그럼, 그런 사람도 분명 있겠지.

B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내 꿈은 즐거운 기억이 잔뜩 있는 할머니라고. 잊어서 더 나은 기억이 가득한 건 너무 슬퍼.

A, C 그렇지. 너무 슬픈 일이지.


아주 잠깐의 침묵.


C (결심한 듯) 그렇담 우리 치매가 슬픈 노인들이 되자. 기억을 잃는 게 죽는 것보다 속상한 노인들이 되자.

A, B (구호처럼) 그래 되자. 우리 치매가 슬픈 노인들이 되자.  



볕 좋은 날 나무 의자에 앉아 부드러운 바람에 흰머리를 살짝 흩트리며 지금의 기억을 곱씹는 노년의 우리를 상상한다. A는 서른까지 백억을 모아 놓고는 펑펑 쓰다 오십까지 살고 싶다고 했고, C는 70이 되면 가지런한 식물처럼 살아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들을 들으며 오십이 넘어서도 굵은 눈썹 사이의 미간을 집중해서 뭔가를 창작해낼 A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보다 존재 자체를 유영하는 일에 안착했을 C를 상상한다. 하지만 내일이란 알 수 없다. 다음 주 어느 좋은 이른 밤에 A의 집에서 바비큐를 하자는 말로 셋은 헤어졌지만 우리가 언제 다시 모일지도 알 수 없고 누군가의 사정이란 게 또 불쑥 생길지도 모른다. A는 지금의 정열을 모두 버린 뻔하고 뻔한 오십이 될지도 모르고 C는 식물은커녕 여전히 야행성의 동물의 감각으로 살고 있을 칠십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우리는 그저 지금을 살고 말하고 듣고 이야기하면 된다. 판형을 고르고 띠지에 들어갈 문구를 선택하고 책등의 제목을 정하고는 지금이란 종이를 차곡차곡 모아 한 권의 나를 만들면 된다. 지금의 모음집을 기뻐하면 된다. 그리고 차르륵 넘어가는 책장 사이사이에서 오늘의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면 그걸로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되자.

우리 모두 치매가 슬픈 노인들이 되자.



_



작가의 이전글 예삐가 죽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