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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Oct 28. 2022

프림의 맛

그리고 빛나는 종아리의 힘

        

까만 가죽 자켓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서른의 그녀가 밤바다를 바라본다. 모든 것을 쓸어 담을 듯 포효하던 시퍼런 파도는 이내 흰 거품이 되어 발끝에 닿는다.

흥. 고작 인간의 신발 하나 젖게 하지 못하고 사르르 모래에 묻혀버리는 주제에 큰소리치기는.

괜히 센 척도 한다. 멀건 하늘과 짙은 바다를 보다 그녀는 감시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참 좋은 일이 그렇게 순순히 이뤄질 리가 없다. 그녀는 매일같이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리며 하루를 살아냈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나가 시커먼 저녁이면 돌아왔다. 그 무렵 그녀는 어둠 속에서 살다가 일요일이면 밀린 잠을 청하는 작은 짐승을 닮아있었다. 후회나 외로움은 사치다. 접히고 구겨진 천 원 다발을 짝짝 펴서 세고 모으며 달리고 달릴 뿐이다. 점점 커가는 자식과 당신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도 사치다.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의 손과 발은 경이로움보다 좌절과 부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녀는 그저 무생물처럼 살고 싶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저 가만히 있길 원했다. 그런데 먹고사는 게 일이었다. 난해하고도 난감한 일이었다. 입에 넣고 몸에 입고 숨을 쉬는 그 모든 게 돈이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다. 무생물이라면 빌어먹지 않아도 될 텐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주부로 살던 젊은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오뎅 장사, 요구르트 아줌마, 숙식 식당 아줌마. 그녀의 온몸에 새겨진 노동의 각인은 그녀를 조금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하루를 쉬면 일주일이 걱정이고 이틀을 쉬면 한 달이 걱정이었다.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밭을 걸으며 걸을 수밖에, 늘 하던 대로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그런데 어째 일해도 일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는 커갈수록 돈이 들었고 생물은 먹어야만 살았다. 그녀는 오토바이를 선택했다. 다른 일보다 천 원짜리 지폐를 손가방 가득 모아 올 수 있던 일이었다. 땅도 집도 절도 없는 돈 필요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정적이다. 결국엔 몸도 마음도 시간도 모두 다 팔아야 한다. 그녀는 수치를 팔기로 했다.     



일명 오봉순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커피를 배달하는 여자를 말한다. 지금은 소 읍내쯤에야 간혹 보일 풍경이지만 그때는 지금의 카페만큼 길에 널린 게 다방이었다. 그녀는 엉덩이가 보일 듯이 짧은 스커트나 흰 스키니 진을 입고 아슬하게 길을 달렸다. 유난히 종아리 근육이 탄탄한, 흡사 운동선수의 다리는 그녀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니 이렇게 다리 튼튼한 여자 봤나? 그녀의 우직한 생명력은 어쩌면 그 튼실한 종아리 근육에서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보통 다방에서 전화를 기다리거나 빨갛고 파란 보온병에 뜨겁게 내린 커피를 붓고 설탕과 프림을 챙겼다. 가끔은 쌍화차거나 마차, 대추차를 함께 넣었다. 그것들을 오봉이라 불리는 오방색 꽃그림이 그려진 양은 쟁반에 옹기종기 모은 뒤 배색 보자기로 한 겹 두 겹 단단히 매어 오토바이에 싣고 자신도 실었다. 커피를 시킨 사람은 그 둘을 모두 시켰으니 그녀도 실리는 게 당연했다. 여종업원의 미모에 따라 가게 매상이 좌지우지되고 대놓고 그녀들을 탐하는 게 평범하도록 지루한 시절이다. 기억 불능자인 내가 이토록이나 잘 기억하는 이유는 열 일고여덟 즈음 가끔 그곳에 들렀기 때문이다.



그녀와 달리 여고생에게는 먹고사는 일 외에도 돈이 필요했다. 일기장에 붙일 스티커와 깔 별의 펜을 사는 데는 머니가 필요했고 그즈음 혼자 다방을 운영하던 그녀에게는 전화받을 사람이 필요했다.

유행은 빨리 뜨거워졌다 더 빨리 식는다. 이미 다방도 오봉순이도 시들던 시기다. 북적이던 실내는 가끔 호기 어린 뜨내기들로만 채워졌고 뜨겁던 전화기는 어쩌다 울렸을 뿐이다. 따르르릉. 네, 강변입니다. 커피 두 잔이요, 알겠습니다. 오호호 따위의 높은 웃음소리는 낼 수 없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다. 아, 디스 두 갑도 같이요? 시절과 상황이 씌운 역할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시절을 봄날 바람처럼 기억한다. 한 테이블에 둘이 붙어 앉아 여름이면 콩국수를 시켜 먹고 겨울이면 난로 위에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담아 팔팔 끓이던 그녀와의 연애로 기억한다. 타닥타닥 걸어내려가야 했던 지하의 작은 다방에서 진동하던 커피 냄새, 좀처럼 들을 수 없던 그녀의 호탕한 웃음, 종일 틀어져 있던 구형 텔레비전, 기도처럼 문 앞을 지키던 빨간 공중전화, 살균소독기에 뜨겁게 말려지던 흰 커피 잔들, 줄을 지어 대기하던 긴 보온병들, 가끔씩 타 먹던 땅콩 율무차, 한번 푹 떠먹어 본 프림의 맛, 크고 작던 초록의 화분, 아무렇게나 펼쳐진 주간 신문, 경쾌하게 뛰어가던 그녀의 구두 소리로 기억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가운데서도 어쩐지 엄마 발 냄새가 종종 떠오른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발 냄새라니. 하루 종일 구두를 신고 뛰어다닌 까만 스타킹의 냄새라니. 그 시큼하고 짠 냄새를 떠올리면 그녀가 살아냈어야 할 바다 같은 시간이 내 앞에 밀려든다. 셀 수 없는 파도의 포말이 눈앞에서 부서진다. 언젠가 그녀가 술김에 고백한 그녀의 삼십 대는 칡차처럼 어두컴컴한 터널이었다. 끝이 보이질 않아서 이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울다 나와 동생을 데리고 죽으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다 한다. 당신 혼자 가면 덜렁 어린 새끼들 남을게 눈에 밟혀서 같이 죽으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바다를 찾아갔다고 한다. 분명 난 그저 신난 망아지처럼 뛰었겠지만 그 뜀박질이 그녀를 멈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검푸른 바다 앞 죽음을 구하는 엄마와 그저 신난 딸. 그녀의 삼십 대는 딸인 나에게도 어두웠지만 어느 정도 살만하고 어느 정도 빛이 보이는 시기였다.

이제는 그게 다 그녀의 종아리의 힘이자 빛이라는 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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