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aaaaaaaa, 191015
며칠 동안을 한 시간씩 울던 아가가 오늘은 웬일인지 아빠 품에서 울음이 좀 사그라들었다.
그의 달래기 기술이 섬세해진 덕일까.
아니면 잠드는 감각이 조금은 편해진 이유일까.
찰떡이는 요즘 일정한 시간대가 되면 있는 힘을 다해 자지러지게 운다. 배도 부르고 기저귀도 말끔한데 어디가 불편한 걸까.
알 수가 없다.
코가 막혀 답답한가, 면봉에 물을 묻혀 동그랗고 작은 콧속을 적셔보고
입은 옷이 조이는가, 옷을 갈아입혀봐도 좀체 그치질 않는다.
보통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가 예민한 걸로 봐선 아마도 잠투정이겠지 하고 추측할 뿐이다.
처음엔 '잠투정'이란 단어가 곰살맞다고 생각했다.
우는 아가로선 너무나 답답하고 화딱지가 나는 일이겠지만 어른인 입장에서 '잠투정'은 왠지 사랑스럽다. 잠이 오면 포록, 잠에 들면 되는 것을 졸린데 그걸 어찌할 방법을 모른다는 게 귀여울 따름이다.
정말 이 작은 생명은 生을 처음 살기에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다 배워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아직 서툰 엄마인 탓에 '갈 곳 잃은 잠'으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우는 찰떡이에게 간혹 뿔을 세우기도 했다.
"아니, 잠이 오면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양을 세던가, 음후음후 숨을 천천히 쉬어보던가 하면 될 거 아니야. 아이, 답답해."
태어난 지 한 달 조금 넘은 아가에겐 말도 안 되는 주문이다. 서툰 엄마는 아기의 마음을 헤아리는데도 서툴다. 엄마 시절은 가까이에 있지만 너무나 짧고 나의 아기 시절은 길지만 너무 멀리 있어 모조리 잊어버린 까닭이다.
물론 그 잠투정이 안쓰럽기도 하다. 온몸과 표정으로 괴로워하며 우는 모습은 꼭 아무리 졸려도 눈을 감고 스르르 잠들 수 없는 벌을 받은 것만 같다. 신화에 나오는 온갖 종류의 형벌처럼 부모의 시간을 빼앗은 이유로 단꿈을 꾸는 유희를 빼앗았던가 하는- 뭐 그런. 그렇지 않고서야 잠에 드는 과정이 이렇게 혹독하고 힘들 수가 없다.
아,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기도 했다.
아기들은 '잠'이라는 개념이 없어 그것이 어른들의 '죽음'과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작은 죽음을 맞는다). 본능에 이끌려 눈을 감지만 그것으로 인해 친숙한 이들과 작별하고 오직 나만의 까만 밤으로 떨어져야 하는 시간.
이 작은 아기는 얼마나 그 시간이 무섭게 느껴질까. 특히나 주위를 둘러싸던 일정적인 심박 소리도 일렁이는 파동도 없는 지금에야 말이다. 물론 어른이 되면 모든 잠에 익숙해지겠지만 그날을 생각하기에 나의 아가는 너무 작고 너무 약하고 짧거나 긴 개인적인, 삶에서 가장 개인적 일 수 있는 작은 죽음-휴식의 시간에 익숙해지기엔 너무 어리다.
가장 타당해 보이는 논리는 엄마 뱃속과 환경이 너무 달라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 어떤 어른이라도 언어나 환경을 전혀 모르는 곳에 떨어진다면 한동안은 오래도록 잠을 뒤척일 테니.
문득
잠자는 아기의 모습이 가장 이쁘다고 하는 건 어쩌면 잠의 제자리를 찾은 아기가 대견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의 제자리를 배우고 그것들에 익숙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아, 우선은 서툴기만 한 내가 엄마의 제자리를 배워가야 할 노릇이다.
아가,
잠에 쉬이 들든 아니든 우린 네가 참 장하단다.
P.s
찰떡이는 잠투정할 때 응애~ 보다는 영어식으로 운다.
어떻게?! 이렇게,
Waaaaaaaa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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