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싸움 영상을 봤다.
화려한 태클과 발차기처럼 온갖 기술이 난무하는 강호들의 혈전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진심을 담은 결투로 그곳엔 모두 세 명이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영상을 찍고 있는 아마도 아들일 듯한 제삼자.
할머니는 있는 힘껏 다리와 팔을 뻗었지만 상대의 그 어느 신체에도 닿지 않아 잔뜩 약이 올랐고 할아버지는 또 반대로 자신의 팔과 다리가 혹여나 진짜 타격을 할까 봐 각도를 조절해 가며 할머니의 몸을 피하면서도 극진히 약 올리는 데 애와 용을 썼다.
팔 한번 휘두르고 휘청, 엉성한 뒷발차기 뒤에 다시 휘청. 술래잡기 같은 몸싸움이었다.
까만 누빔 잠바, 일명 커플 깔깔이를 맞춰 입은 그들은 약 15초 동안 연신 팔다리를 휘저었고 영상을 찍는 이는 내내 꺽꺽거리며 웃었다. 소리가 유쾌했다. 그러다 영상은 결국 바짝 약 오른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팔뚝을 부여잡고 둔부를 발로 걷어 차는 것으로 끝이 났다. 누구도 제대로 맞지 않고 다치지 않는 그들의 난타전은 어쩐지 주성치 영화 [쿵푸허슬]의 사자후 아주머니와 태극권의 고수 아저씨를 떠오르게 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깔린 고수들의 눈치, 코치, 몸치 싸움이랄까. 농담과 배려, 웃음이 섞인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아마도 세 번 정도 그들의 몸싸움을 끅끅거리며 볼 때쯤 문득 그와의 말다툼을 생각했다. 그는 말했다.
상냥하게 말해 줘. 특히 호칭에 신경 써서 말이야.
요즘 툭하면 ‘니가 해’라는 식으로 말하는 나를 향한 불만이었다. 물론 여느 커플처럼 우리도 평소에는 서로를 ‘자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니가’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동갑에 원래 친구였던 터라 그 말이 어색하지 않은 데다 작년부터 그의 행동이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제대로 털어놓지 않고 겹겹의 페스츄리처럼 쌓아둔 채로 아니, 방치한 채로 돌아보지 않은 탓이다. 한참을 풀지 못하는 퍼즐을 쥔 것처럼 답답하고 무엇한 마음을 펼치지 못하다가 일주일 전쯤 터지듯 쏟아내었고 그 역시도 그랬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찬찬히 꺼내고 담았다. 그 덕분에 다행히 얼마간의 오해와 경계의 마음은 풀었지만 역시나 그 노부부에 비하면 한참이나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지낸 시간의 길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내공, 약이 오르고 화가 나는 것을 목젖 치기와 뒷발차기로 승화시킬 그 연륜의 내공, 서로의 약한 부분은 결코 때리지(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나의 화를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는 여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 사실은 여유에서 나오는 그 모든 것들 말이다.
그리고 호칭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화가 났을 때만큼은 결코 자기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죽어도 쓸 수 없다. 차라리 ‘당신’이라던가 이름을 부른다. 자기라니. 이 말을 처음 연인에게 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할 만큼 사랑에 미친 사람인가, 혹은 시적인 사람인가를 생각한다. 엄연히 다른 주체에게 자기 자신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다니 대체 얼마 큼의 마음이어야 그런 부름을 할 수 있을까. 삼켜 내 것으로 하고픈 욕망이었을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나 색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사랑하는 토끼야, 물빛아.
혹, 처음 그 단어를 연인에게 들었던 사람은 헷갈리지 않았을까. 이 사람이 독백을 하는가 잠시 골몰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어는 결코 단 한순간에 만들어 지지도 한 사람의 신념에 의해서 세워지지도 않는다. ‘자기’는 결국 세대가 쌓은 말이다. 상대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동일시 여길 만큼 극도로 친밀한 마음이 모인 단어인 것이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났을 때는 절대 그 호칭을 쓸 수 없다. 나와 이다지도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자기라고 부르다니 가당치도 않다. 잠깐만. 혹시 이건 세뇌의 일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기 난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은 결국 은연중에 그러니 나와 동일한 너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라는 말이 되는 것 않을까. 또는 부디 나와 같은 사람이길 간곡하게 바라는 사념은 아닐까. 물론 모두 헛소리다. 나는 다만 잠시 그것들의 가능성을 열거할 뿐이다.
이 모든 글은 그저 그 노부부처럼 유쾌한 싸움을 하지 못해서, 그리고 결국 그의 엉덩이를 발로 차지 못해서 이렇게 주절주절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기야 이 세상 모든 자기들의 싸움이 이렇게 유쾌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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