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등을 기댔지. 오늘을 생각했어. 정확히 말하면 너와 있던 낮 열한 시 반에서 밤 아홉 시까지의 시간. 더 정확히 말하면 너와 너를 닮지 않은 여자애와 나를 닮지 않은 여자애와의 시간. 푸름을 달리고 입을 벌려 빛을 먹던 작은 연속체들.
그 사람 조만간 결혼할 거 같아.
그 사람이라고 불리는 지난 누군가를 얘기하다가 우리를 닮지 않은 우리의 딸들이 환한 얼굴로 수영장 속에서 물을 튀기고 서로를 끌어안는 것을 보다가 왜 첫째 딸들은 아빠를 꼭 닮을까. 그렇게만 말하다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도 못한 채 뭐든 테이크 아웃으로 허겁지겁 빨아대는 생이 지친다고 말하다가. 하긴. 어차피 사는 건 다 그런가 하고 말하다가. 그런데,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이었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사라지는 것을 애도하는 시간. *그 이전은 꿈, 그 이후는 농담, 오직 진행 중인 것만 있을 뿐. 그러나 사라지고 진행 중인 것들을 보내는 우리는 유쾌하고 싱겁지. 싱거워서 좋지.
물놀이에 손가락 발가락이 퉁퉁 부은 줄도 모르는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우리의 몫은 끊이지도 않지만. 괜찮아. 우리 여기 이렇게 벌겋게 뜨거운 얼굴로 펄떡이는 작은 나신을 끌어안은 채 발을 적시며 웃고 있잖아. 정말 무서운 건 다 그렇게 산다가 아니라 다 그렇게 죽는다는 말.
살아 있는 것은 그렇게든 이렇게든 찬란한 거라서, 우리의 딸들은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안도가 우리를 버티게 해서. 하긴 그러고 보니 너의 콧방울을 네 딸이 그대로 닮았네. 나의 딸은 나의 눈매를 그대로 닮고.
그러나 사실 이 새벽 내가 정말로 쓰려던 건.
길고 시원하던 터널 끝을 걷는 너와 네 딸의 종아리가, 그 날렵하고 매끈한 곡선이 너무나 닮았다는 것. 살빛의 광채가 반짝이던 그 종아리의 얼굴이 동시에 돌아 똑같이 웃었다는 것. 이렇게 길고 지루한 여름도 이제 곧 끝나가리라는 것.
우린 늘 그랬지. 통통 튀는 생보다 깊게 가라앉은 생의 찌꺼기, 여유의 갈망, 비교의 낙오, 나이의 무색함, 그런 것들을 얘기했어. 빛을 빼앗긴 찬란함 같은 것들. 속이 곪아버린 관계와 모자란 손가락, 불안한 발끝 같은 것들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리가 한 말들은 로맨틱과는 먼 말들이었지만, 그랬을까.
D야,
과연 그랬을까.
신시아 오직의 <숄> 부분 "그 이전은 꿈이에요. 그 이후는 농담이고. 오직 진행 중인 것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걸 삶이라 부르는 건 거짓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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