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아니 거짓말.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자각.
나는 취기의 정도를 발가락과 발등으로 감지한다. 발끝부터 시작한 전율이 서서히 발전체를 타는 감각을 통해 신체 내 알코올 포화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미미한 15% 혹은 만취에 가까운 80%의 취기를 다른 신체 부위도 아니고 오로지 발로서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건 단순 인지에 다름없다. 취기를 안다고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조절할 마음도 없는 탓이다. 그저 아, 이제 취하는구나 하고 감탄할 뿐이다.
술의 권능, 이성을 무너트리고 감정을 도취시키는 오 나의 디오니소스의 은총이여.
간질이는 감각이 얼얼해질 정도가 되면 그때야말로 자제해야 할 순간이지만 단 한 번도 자기 절제와 친해본 적 없다. 절제 따위 사나운 개한테나 줘보라지.
어제도 그렇다. 청포도 와인으로 시작해 품종을 외기도 어려운 붉은 와인을 단시간에 들이키고는 발가락이 얼얼한 채로 택시를 타고 권력의 폭정을 토로하는 택시기사에게 내가 다 미안해요, 권력이라고는 잘린 손톱만큼도 없는 주제에 떠들어대다 다음 술자리를 찾아 나선 어제 말이다.
한 번 만질 때마다 오백 원씩 내세요.
얘가 먼저 다가온 거면요?
아, 그러면 오백 원 차감요.
야외에서 술 마시는 주인을 기다리는 허리 긴 개를 쓰다듬고 또 쓸데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밤. 아니 새벽. 혹은 빈 시간. 그저 그런 푸른 여름날. 물방울이 송송 매달려 붙은 아이스버킷에서 와인을 꺼내 서로의 잔에 액체를 터지듯 담고 하나둘 켜지는 가로등 곁에서 잔을 부딪히고 말간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작은 고양이, 그 뒤의 큰 고양이에게 빵조각을 던져주는 여름밤.
아무 의미 없는 단어들에 웃고, 일어났으나 우리와 관계없는 일들에 분개하고, 지난 일에 울다 꽃처럼 목을 꺾어 술을 마시고 다시 웃는, 붉게 오른 모기 자국을 찰싹 때리는 여름밤. 작은 알전구 같은 대화가 줄줄이 연결된 밤. 어쩌면 소멸을 슬퍼하는 이들의 발악.
펜넬향이 가득한 당근 레페와 꾸스꾸스를 입에 넣으며 우린 무슨 얘기를 했던가.
꿀꺽꿀꺽 포도주를 삼키며 우린 무엇을 축복했던가.
이마가 뜨겁다. 아침부터 해는 목적 없이 빛나고 나는 눈이 부셔서 도로 눈을 감았다. 우리가 헤어지던 새벽 거리는 텅텅 비었고 어쩐지 나 역시 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 한 번도 채워진 적 없던 것처럼 빈 구멍이 뻐끔거렸었다. 그러나 아침.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부신 아침. 머리에는 진동이 속에는 불이 타오르는 듯한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는 어제 뜨거운 술을 마셨던가, 아직 헤매는 아침.
아아 나의 초능력, 아니 아무것도 아닌 자각. 발가락이 말한다. 20% 네가 취한 것은 딱 그 정도, 아마도 오후까지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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