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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성. 학.

by 윤신


그는 겨드랑이에 '독성학'이라는 책을 끼고 있다. 전형적인 전공서적이 가진 사이즈와 두께, 글씨체지만 제목은 유독 낯설다. 독성학이라니. 연극학, 심리학, 수사학, 경제학, 건축학 같은 것들은 들어봤어도 독성학은 처음이다.


독성학이 뭐예요?


순전한 궁금증이었다. 고래 귀는 어떻게 생겼어요? 저어새는 어떻게 울어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지의 눈은 반짝인다.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독성학'이라는 단어를 발음한다.

독. 성. 학.

뭔가 굉장히 독하고 모진 마음이 느껴지다가 어쩐지 헨젤과 그레텔의 새엄마가 생각난다. 애들을 그만 산속에 두고 와요. 계획은 실패한다. 그러나 시도는 반복된다. 버려요라는 말은 죽여요보다 가혹하지 않은 것인가. 어휘를 순화한다고 그 속에 똬리를 튼 감정도 가벼워지고 둥글어질 것인가. 그 버리는 감정이, 어린 생명(인간이든 개든 고양이든)을 시커먼 숲에 사붓이 두고 오는 행동이 내겐 독성학의 발음이 풍기는 독기를 닮았다. 독. 성. 학. 매몰찬 첫음절의 'ㄱ' 받침은 무언의 예고를 하고 뒤음절의 'ㅇ'받침이 살살 달랜다. 괜찮아,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그리고 거침없는 마지막 받침 'ㄱ'이 매듭짓는다. 그런데 어쩌니 이젠 바이바이.


독성학이란 말이죠, 말 그대로 독성을 배우는學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우린 질문할 수 있죠. 독성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런데 도대체 어느 과에서 그런 공부를 하지요?

생명과학부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말은 이어진다.


독이라는 게 재밌어요. 모든 물질은 독이 될 수 있거든요. 이건 또 치사량과 연관이 있는데,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필수불가결한 물도 독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만약 누군가가 한 번에 1t의 물을 마신다고 치죠. 그러면 그 사람에게 물은 독이에요. 생명에 위협이 되죠. 하지만 반대로 독이 약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양과 희석의 정도에 따라서요.


그가 해석한 독성학에 나는 감탄했다. 세상에는 물마저도 독이라 인식하는 영역이 있다. 어떤 물질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뻗어나가는 학문이 있다. 여전히 알지 못하고 조금도 추측할 수 없는 세계는 우주의 행성만큼이나 많다.

불현듯 독에 대한 나름의 단상이 떠올랐다. 감정의 독인 '질투'나 '미움'에 대한 것이었다. 때때로 적당한 질투는 나를 일으키고 시기적절한 미움을 나를 돌아보게 했다. 질투도 미움도 대체불가의 힘이었다. 물론 그런 부정 감정은 에너지의 파장이 커서 주체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미 불거진 심상은 스스로 닫힐 줄 모르니 그 파동에 서핑하듯 실릴 수밖에 나는 없었다. 몸을 낮추고 나를 삼킬 파도를 경계하며 흐름에 몸을 맡기고서 뭐, 왜 어쩌라고 하는 갸륵한 마음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이 지나가도록 인정하는 수밖에 나는 없었다. 그런 감정의 해독에 필요한 것은 오직 객관적인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녀가 아닌 새엄마가 더 독성학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마녀는 천진난만하게 잔인하다. 살찌워 너를 잡아먹을 거야. 새 앞의 고양이처럼 등등하다. 대놓고 터트린 공포는 아이들을 계획하게 하고 결국 무쇠솥에 떠밀리게 한다. 그러나 새엄마는 다르다. 뒤에서 아빠를 조종하고 무력하게 방치한다. 더러운 피는 보지 않겠다는 듯 깨끗한 손으로 서서히 상대를 진흙에 가라앉게 하고 눈앞을 묶는다. 너의 캄캄한 지금을 보렴, 상냥하게 아이들을 저주한다.

마녀가 칼이라면 새엄마는 독인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는 독성학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그는 떠나기 전, 정 궁금하면 책을 펼쳐 알려주겠다고 했고 나는 진심으로 사양했다. 어느 전공책이든 그리 신나고 재밌을 리는 없다. 독화살개구리의 독이 치사에 이르게 하는 확률만큼 신속하고 빠르게 나는 답했다.


아니요,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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