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노츠카 이야기
아마도 여름, 소매 없는 잔꽃무늬의 긴 원피스를 입은 스물여섯의 나는 같은 어학원을 다니는 별로 친하지도 않던 언니의 아르바이트 면접을 아무 의식도 없이 따라갔다. 온통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아이라인을 짙게 그린, 어쩐지 일본사람보다 더 일본사람 같던 언니였다.
혹시 시간 있으면 우에노에서 면접 있는데 같이 갈래?
일본의 여름은 청춘처럼 습했고 내가 머물던 다케노츠카는 주택단지 밀집지역으로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여흥이라고는 고작 빈 공원에서 울면서 그네를 타거나 역 앞 막끄マック(맥도널드)에서 한밤중 책 하나를 살랑살랑 들고나가 마시지도 못하는 블랙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있는 것 정도였다. 그땐 몰랐지만 그즈음 나는 늘 뭔가를 찾고 있었다. 뭔가 더 스물여섯을 붉힐 수 있는 것. 색색의 얇은 천이 끝도 모르게 나오는, 속이 보이지 않는 마술 상자 같은 것. 더 철저하게 나를 모르는 세계에서 제 멋대로 굴고 싶은 무색무취의 욕구 같은 것. 잠시라도 눈을 반짝일 값싼 지르코니아 같은 시간 같은 것. 그녀를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나에겐 없었다.
아마 기타센쥬까지 가서 히비야센으로 환승했다. 그랬을 것이다. 그 이후의 기억은 오로지 면접을 보던 곳의 여사장이 던진 ‘너도 일 할래?’ 던가 ‘너도 같이 하면 좋겠다’ 같은 뉘앙스의 말과 다음날부터 정말 출근했다는 사실뿐이다. 한참 덜컹이는 전철 안에서 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가로로 슬라이드 되는 진분홍의 핸드폰으로 일드를 보며 이것도 공부라고 자위하면서, 오전에 파트타임 하나를 더 하려 우에노 근처 커피숍 구인 리스트를 확인하면서, 급료를 받는 날은 근처 유명한 전통 디저트가게인 미하시에서 안미츠라도 사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난 무엇을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하다. 당시의 내 안엔 불안과 두려움이 이미 성처럼 쌓여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을 벌어야지, 뭐라도 하나 남겨야지 따위의 강박만이 팽이처럼 내 안에서 빙빙 돌았겠지. 그냥 그렇다. 그때를 떠올리려 하면 구체적인 상황보다 뭉개지고 번진 색감 같은 것 사이로 작은 알갱이만 툭툭 던져진다. 어딘가를 갔지만 어떻게 간지도 모르고 근처의 바다, 조개 모빌, 비둘기 모양의 사브레, 그런 것들만 조각을 이룬다. 결코 하나를 이룰 수도 연결되지도 않는, 각자 다른 바위에서 쪼개진 바싹 마른 모래알들처럼 조각들만이 내 안을 빈둥거리며 굴러다닌다.
고로고로 고로고로 ゴロゴロ ゴロゴロ
(데굴데굴 데굴데굴)
그래서 그때의 일을 기억하자면 뭐랄까 좀 어렵다. 단편적인 것들만 그것도 아주 대충 기억나는 탓이다. 하지만 우에노역 뒤편의 고깃집이 줄을 선 좁은 골목 이층 그곳의 이름은 잊히지 않는다. 키즈나絆きずな. 바의 이름으로 하기엔 참 거창해서 잊기 힘든 단어다. 끊기 힘든, 끊을 수 없는 연결, 혹은 인연. 뭐, 생각해 보면 거기에서는 유독 그런 사람들이 많긴 했다. 충격적인 만큼 각인되어 버려 잊을 수 없는, 고로 끊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인연들. 하지만 그러고 보면 키즈나絆라는 연결만큼 흔해빠진 게 또 있을까 싶다. 사람과 사람의 모든 불안과 안정은 거기에서 오는 것일 텐데. 알게 될수록, 만나 속을 터놓을수록 의도치 않게 점점 가는 실로 칭칭 매어져 버리는 그것이 사람을 들고 내리는 것일 텐데.
돌이켜 보면 키즈나라던가 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내 이성과 상상을 뛰어넘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어둔 선을 가볍게 넘어버렸다. 구구절절한 내 머릿속을 비웃듯 그게 뭐 어때서, 코웃음 치며 순식간에 앞으로 달아났다. 이런 생의 방식도 있구나, 경이로운 사람들이었다. 몇 년 전, 대구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바의 주인은 내게 ‘나의 소설작법私の小説作法’이라는 일본 원서를 선물로 준 적이 있다. 1966년 매일신문사에서 발행한 낡은 책으로 수십 명의 작가들이 말하는 자신과 그들의 글쓰기에 관한 짧은 글들이었다. 소설이 쓰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덧붙였다. 참, 일본의 사소설도 흥미롭지요. 그리고 그인가 내 옆의 그인가도 말했다. 하지만 사적인 만큼 한계도 있고요. 그러나 그때 나는 몰래 말했다. 글쎄요.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내 상상보다 확장되고 경계를 넘어선 사람들인 걸요. 상상력이 궁핍한 탓에 지금도 내 생각은 동일하다.
면접에 같이 가자던 언니는 고작 며칠도 채 일하지 않고 그만두었고, 단지 심심해서 따라간 나는 여름부터 시작한 일을 빨간 체크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던 겨울까지 했다. 그 사이 난 1963년에 개점한 클래식한 분위기의 우에노 근방 킷사(찻집)에서 더블로 일을 하고 난생처음 남자 스트립바에 아무것도 모르고 졸졸 놀러 가서는 환호로 성의를 보였으며 죽을 정도로 몸살을 앓기도 하고 동성연애를 하던 모모짱을 알게 되기도 했다. 물론 자세한 기억은 없다. 다만, 한 여름 새파란 나무 어딘가에서 귀에 쟁쟁히 울리도록 한철을 나던 매미의 울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와 비례하던 바람의 선선함, 무너질 듯이 쏟아지던 벚꽃의 연분홍 춤, 이름은 기억도 나지 않는 동료들과의 당일치기 노천 여행, 에노시마에서 팔던 유리 풍경이 흔들리던 나선의 형태, 후지산을 오르다 마주한 별과 별과 별의 무더기 같은, 역시나 그런 것들만이 조각으로 내 안 어딘가에서 굴러다닌다.
고로고로. 고로고로 ゴロゴロ ゴロゴロ
(데굴데굴 데굴데굴) 한참이나 굴러다닌다.
원래는 일본의 여름과 모모짱의 이야기를, 그가 내게 건넨 농담 같은 진담을 쓰려했었다. 우리가 나눈 건 시시한 농담뿐이면서도 감히 그를 쓰고 싶었었다. 그런데 적다 보니 그 곁에서 굴러다니는 것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여섯 언저리의 희끄무레한 기억들. 어쩌면 부풀리고 어쩌면 축소시킬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 기억이 얕은 탓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씩 사탕처럼 꺼내볼 것이다. 핥다가 입안에서 굴리고 끝내는 삼킬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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