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부음을 읽었다. 아끼는 사람의 아버지였다. 거의 밤을 샌 상태였기에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닌지 몇 번을 확인했다. -부고-라고 시작하는 글은 지워지지도 탈락되지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손바닥을 비벼 눈에 가져다 대자 눈 언저리가 뜨거워졌다. 지난밤 나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쓰고 얼마쯤 털어내자고도 생각했다. 그게 비록 남은 내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지라도 한 번쯤은 꺼내봐야겠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아침, 친구 아버지의 죽음을 들었다. 그녀의 선선한 얼굴과 똑 닮은 나이 든 남자의 얼굴이 나란히 떠올랐다. 작년 여름 친구 집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는 소파 앞에 앉아 나의 딸이 제멋대로 춰대는 팔다리의 유희를 다감하게 바라보았고 나의 딸은 그런 그의 무릎에 폭 안겼었다. 내 아버지가 있었다면 그러할까.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늘 그가 나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태어난 연도나 신장, 눈썹의 모양, 사투리의 억양 같은 뭐 그런 시시한 것들이었지만 부친의 생존 유무마저 잊고 살던 내가 가끔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건 돌멩이 사이의 운석 결정처럼 지나칠 수 없는 조각이었다. 아버지라는 자리, 아버지라는 의지, 평소에는 있는지도 모르던 불가해한 영역이 눈앞에서 굴러다녔다. 태초 나를 구성하는 반 half이었으나 부재를 탓한 적조차 없을 정도로 무감하던 인간이지만, 아니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사라져 준 게 감사할 지경의 인간이지만 결코 없는 존재가 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통의 일상, 그러니까 한여름 짙은 색의 소파 앞에서 문득 마주치는 타인의 아버지는 이미 해체되어 산산이 부서진 나의 아버지를 더 잘고 곱게 갈아버렸다.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 모습으로 다른 인생을 사는가도 싶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라니. 가벼운 혼란이 일었다. 나에게는 사금파리 같은 존재의 조각이나 친구에게는 그녀 자체를 이루는 세계의 큰 부분일 것이다. 글자에 꾹꾹 눌러쓰지 못한 마음을 생각하고는 어떻게 숨을 쉬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엇나간 박자로 공기를 들이마시다 어린아이처럼 입을 삐죽이며 울었다. 내 아버지도 아닌데, 아니 내 아버지였다면 울지 않았을 텐데, 별 생각을 다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지도를 열었다. 330km의 이동 거리를 눈으로 가늠하고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망연히 보다 다시 지도를 봤다. 폭우 사이로 어떻게든 나는 죽음 앞에 서야 할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장, 어쩌면 그렇게도 서먹하고 껄끄러운 단어들의 조합이 있을까. 회피가 익숙한 나로서는 그 조합의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거리가 멀다는 것도 그랬지만 가까운 이의 부모가 돌아가신 게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의 상실의 자리에 완전한 타인이 무엇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말했다. 내가 그곳을 잠시 지킨다 한들 그녀가 조금이라도 안심하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요.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슬픔을 덜 수는, 슬픔을 가볍게 할 수는 있지요.
삶을 무언가로 채운다면 그건 간편한 회피보다 자리를 지키는 사랑과 위로여야 한다. 남아 있는 이의 손을 쥐고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어야 한다. 감싸 안는 품의 따스한 체온이어야 한다. 지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생각한다.
기차가 연착되는 동안 그와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생식적인 것에, 태생적인 것에 가깝다.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 불린다는 것. 그러나 다른 점은 좀 더 후천적인 것의 결과로 그는 많은 것을 나의 아버지는 최소의 조건만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때는 그렇다. 나의 아버지는 가진 게 없다. 몇 명의 아내도 자식도 돈도 다 떠나보내고 새로 태어난 손자 손녀 한번 보지 못했다. 따닥따닥 빼곡히 붙은 건물 안 비어있는 방 하나, 가난의 냄새가 지독하고 소주병이 쓰러진 누런 장판에 모로 누운 팔십의 노인을 생각한다. 무치한 그 노인은 늘 남을 탓하고 자신을 우러러볼 것이다. 여전할까, 여전하겠지. 남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가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만다. 하지만 진짜 나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또 어떤 생각을 할까. 잘 모를 일이다.
도착한 도시에도 비가 내렸다. 길가에도 뉴스에도 온통 비다. 도로 위 차들이 퉁기는 구정물을 피해 가며 버스를 기다린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전히 모른다.
누군가 울면 나도 운다. 무심코 튼 TV에서 생판 모르는 이의 울음에 터지는 당혹스러운 울음을 어쩔 도리가 없다. 나의 이해가 맞물리는 부분에서, 상대의 바닥이 그대로 전달되는 얼굴에서 속수무책으로 끅끅거리며 울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 기분에 취하거나 상황에 젖어들어도 울고 만다는 데 있다. 장례식장에 가야지, 와 동시에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거대한 상실을 감당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더 속 편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의 맨 얼굴을 보는 순간, 검정 저고리 밖으로 내어진 손바닥을 감싸는 순간 갈비뼈 가운데가 먹먹해지고 눈이 벌게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떤 말도 없이 그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입술을 깨물고 손을 꼭 잡았다. 맺히는 눈물 따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중요한 건 결국 그런 거 아닐까. 아무 말할 수 없어도 그대로도 충분한, 보탤 것이 없어도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걸로 다행인 그런 거. 그 아이의 슬픔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바라는 그런 마음 같은 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자리를 공백으로 남겨 두고 가만히 지킬 뿐이다. 조금씩 고통이 슬픔이 휘발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감히 상상할 뿐이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했다. 그러나 나의 그것과 그녀의 그것은 애초부터 다른 모양과 색을 해서 그 심정의 근처도 가닿지 못함을 안다. 아버지를 어머니로 대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른 은하처럼 다른 세계일 것이다. 아버지. 만약 누군가 나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였는가를 물어온다면 나의 대답은 단순하다. 나는 그를 이용했다. 상대의 마음을 방심하게 하고 풀어놓기에 아버지만큼 훌륭한 이야깃거리는 없었다. 그의 부재는 항상 나를 가엾게 했고 그와의 기억은 발가벗긴 나를 노출하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살면서 그 사람만큼 나쁜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 태어나면서 만난 첫 남자가 최악이었던 셈이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이만큼이나 적절한 소재가 있던가. 그러니까 그는 나의 비겁한 부분 중에 하나다. 상대의 시선을 끌기 위해 너무나도 적합한 미끌 대는 미끼 같은.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아버지란 꽤 다른 존재로 감히 내가 비교할 수 없는 아득히도 단단하고 커다란 누하주의 일부임을 안다. 어쩌면 유년의 내게도 그랬던 것 같지만 역시 나의 상상은 당신의 것과도 그녀의 것과도 전혀 다를 것이다.
이틀이 지났다. 그치지 않을 거라던 비는 그치고 그녀의 아버지의 몸은 빈소를 떠났다. 그의 빈자리를, 나의 아버지의 빈자리를 생각한다. 같은 단어의 다른 의미를 한참이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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