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by 윤신


말을 하는 건 육체가 아니라 기억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이 지배하는 육체다. 눈에 새겨진 빛, 달싹이는 입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음성, 손가락이 쥐고 써 내려가는 문자의 배경에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짐승이 침잠해 있다. 어쩌면 당신은 그의 작업을 단순한 사건 기록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은 그것을 가붓하게 넘어선다. 기억은 자신의 몸을 편집하고 교차시켜 다른 맥락으로 이어 붙인다. 당신이 스스럼없이 진실이라 믿던 것에 웃음을 날리고 진짜는 무의식 뒤로 숨겨버린다. 보이고 싶은 부분만을 찰랑이는 물밖에 내밀어 당신을 현혹한다. 이것뿐이야. 네가 기억하는 건 오로지 이것뿐이야. 하지만 그 안의 물을 다 들이켜 수면 아래를 보기 전까지 당신은 알 수 없다.


너의 최초의 기억은 뭐야.


스물세 살 무렵 가끔 타인의 정신분석을 공부하던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적어도 최초로 기억한다고 믿는 소리나 냄새, 상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천천히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오르자 그 끝에 엄마가 있었다. 나는 앉았는지 섰는지 한 자리에서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다가 문이 탁, 하고 가로로 닫히는 것을, 엄마가 그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고 목이 아프도록 울었다. 예전 할머니집의 오래된 한옥의 장지문을 닮아 얇은 종이로 건너편이 비치는 문이었다. 시커먼 얼룩 같은 엄마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그 문을 흔들며 혹은 팔다리를 휘저으며 나는 더 자지러지게 울었다. 언어 이전의 울음과 몸부림이었다. 이건 아마도 두세 살 즈음의 기억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상황이 정확하지도 않고 엄마에게 확인해 본 적도 없으니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의 눈이 안경 너머 무심하게 빛을 냈다.


기억의 사실 여부는 상관없어. 중요한 건 그 기억 자체가 가진 감정이거든. 너의 바닥, 그러니까 무의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불안, 미움, 기쁨 그런 것들을 말해줄 수도 있는.


최초의 기억, 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그는 최초의 기억이 사람의 일정 부분을 설명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다 운 나의 기억은 뭘 이야기하는가를, 종국에는 엄마에 대한 저변의 감정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나의 답은 단순했다. 나는 그녀를 밤과 낮으로 갈망했고 버려질 것을 두려워했으며 동시에 부재를 미워했다는 것이다.

나의 엄마는 내가 여덟 살 때 집을 나갔다. 그녀의 젊음과 생기의 살점을 뜯어먹던 아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두꺼운 이불속에 숨던 엄마, 웃을 때면 눈이 반달이 되던 엄마, 삶은 달걀을 얼굴과 허벅지에 비비던 엄마, 가끔 도넛을 튀겨 주던 엄마가 혹시 올까 종종 현관을 맴돌았다. 엄마가 살기 위한 조건이 아빠의 부재였다면 내가 살기 위한 조건은 그녀였다. 어린 나는 엄마를 기다렸다. 멀쩡한 한낮에 실종된 생의 조건을 기다렸다. 최초의 기억, 그녀가 사라진 감각이자 나를 돌보고 먹이던 자궁에 벌어진 균열은 이때 뿌리를 내렸던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를 잡아먹던 거인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그녀가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면 내 최초의 기억이 달라졌을까. 오히려 더 시커멓게 멍들진 않았을까. 조금 더 먼 기억을 더듬어 갔다.


기억이 관여하고 변형할 수 있는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당신이 쓰는 언어의 리듬, 책상 위의 정렬상태,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하는 습관, 필체의 기울어짐,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성향, 사 모으는 물건의 취향, 주로 쓰는 식재료, 커피 혹은 차의 농도, 양말의 색깔, 심지어 시나몬 사탕의 호불호 같은 것까지도 기억은 가벼이 손을 댈 수 있다. 혹은 가족을 부르는 목소리의 환희나 떨림 같은 것까지에도.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을 온전히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말랑하고 숨이 가쁜 작은 생명은 순식간에 내가 중심이던 세상을 일그러트리고 망가트렸다. 나를 졸졸 쫓아다니던 자그만 머리통과 보드라운 발바닥을 나는 미치도록 미워했다. 나를 앞에 두고도 엄마는 나를 잊어갔고 그 상실감은 영원할 것 같았다. 너만 없었다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가정을 기원했다. 온전한 내 것(이라 믿던 존재)을 빼앗긴 상실감, 혹 그것이 최초의 기억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최초의 기억을 재생한다. 그때 엄마는 나를 버리고 동생을 향했던가. 최초의 기억이 움직인다. 응애, 하고 문을 닫고 건너간 저편에 어린 아기의 울음이 들렸던 것도, 같다.


기억은 변환된다. 대치된다. 봉쇄된다. 감정을 먹은 기억은 무언가를 숨기고 부러 드러내며 당신의 순간을 재배열한다. 그러나 불변의 진실들, 발현되고 남겨진 일들, 그 무엇도 건드릴 수 없는 부동의 것들도 있다. 텅 빈 내 손을 꼭 쥐던 동생의 작은 손바닥과 어느 한밤중에 돌아와 나와 동생을 몰래 데리고 간 엄마의 달셋방 빌라 같은 생의 증거들. 기억은 공유된다. 퇴적된다. 살아가는 한 어쨌든 계속된다. 찰랑이는 수면 아래에 눈을 돌린다. 최초의 기억 속 문을 닫고 나간 줄 알았던 엄마는 현실에서 다시 문을 탁, 하고 열고 들어와 나를 안았다. 아기 울음의 진동은 그치고 끊겨 있던 비극이 희극으로 전환된다. 정지한 꿈은 뒤로 두고 기억은 이어진다.


당신은 최초의 기억을 살피며 당신을 이루고 있는 기원을 어루만질 수 있다.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설렘, 기쁨, 슬픔을 돌이켜 다시 한번 끌어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초의 기억은 무수한 기억의 하나일 뿐, 그 이후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어떤 눈빛을 지킬 것인가는 퇴적된 기억과 동시에 쌓여질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마주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순간을 채우는 사람과 사물, 오늘밤 잠에 드는 시간 같은 사소한 모든 것들에조차도.


너의 최초의 기억은 뭐야.


그의 말에 한동안 잠을 뒤척인 적이 있다. 최초의 기억이 나라는 인간의 단초가 되어 내가 살아갈 모든 방식과 태도를 모두 정해버렸다고, 나는 알지도 못한 채 끌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 코, 귀는 모두 앞을 향한다. 사람은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 최초의 기억, 그것은 그저 그 모든 것의 시작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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