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위내시경 후기입니다만

by 윤신



주르륵. 개구기 옆으로 침을 흘리며 한숨과 공포를 생각했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주제에 알량하신 자존심을 부리는 화의 어리석음과 수술대 주위에서 스멀거리는 공포, 그 저변에 깔린 무력감을 말이다.

그러나 하나, 둘, 셋.

주삿바늘에 자비란 없다. 선득한 액체로 정신을 잃는 건 순식간이다. 의식과 무의식이 양갈래 머리처럼 가지런히 나뉘고는 한숨이고 공포고 더 이상 알 바 아니다.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열 시에 예약된 검진이 한시에야 시작되었다. 마취에 들기 전 세 시간을 좁은 복도 의자에서 기다리며 책을 들척이거나 허공을 노려보다 결국 할 말을 했다. 앞에 계신 분들 전부 종양이 있는 바람에 제거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할 말을 했다. 살짝 훔쳐본 그들의 검진 예약표에는 삼십 분마다 세네 명의 이름이 있었으니 그들의 말대로라면 최소 열여덟 명의 내장에 종양이 난 셈이다. 혐오의 시대라더니 웬걸 지금은 종양의 시대다. 하아. 후우, 쓰읍. 한숨을 쉬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 최소 다섯 명 이상이 한숨의 퀸텟 연주에 동참했다. 하아, 후, 허. 물론 그래도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변하지 않고 내 앞사람의 종양도 사라지지 않았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 간호사는 물었다. 큰 수술 하신 적 있나요? 제왕절개와 자궁경부암 수술을 이야기하지만 그는 자궁경부암 수술만을 차트에 적는다. 아이가 아닌 비정상세포를 떼어낸 수술만이 내 건강 기록에 남는다. 나는 몇 년에 걸쳐 제자리 암 제거 수술을 세 번했다. 어쩌면 네 번인지도 모른다. 어느 기록에서나 3회 이상이라고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차가운 수술대, 써지컬 스틸 메스, 청록색 수술복, 태양광처럼 눈이 시린 조명, 소독약 냄새, 의사의 번득이는 안경. 세 번이든 네 번이든 그런 것들은 지워지지 않고 공포의 농도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

간호사는 수술 여부에 체크 표시를 하고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린다. 종양이 나오면 제거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추가될 것이다, 마취에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들어도 안 들어도 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 내가 안들 모른 들 달라질 것 없는 늘 그런 것들.


물론 문명의 의술에 감사한다. 제거될 줄 알았던 자궁으로 아이를 품고 낳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그 수술 덕분이다. 그러나 공포는 공포다. 의대생 몇 명이 일렬로 선 수술실에서 한껏 다리를 벌리고 자궁의 병을 보여주는 것도, 피부 바깥이 아닌 내장 어딘가 생채기가 나는 것도, 절걱이는 금속 소리도, 모두 공포다. 오랜만에 수술대에 모로 누워 개구기를 물고 있자니 침보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포로 턱이 떨렸다. 결국 이렇게 무력한 태세로 누워 있을 주제에 뭘 그렇게 티를 내며 한탄을 했을까, 후회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한숨은 시간을 구할 수 없다. 한숨은 상황에서도 심지어 화에게서도 자신을 구해내지 못한다.


그런데 인간은 참 신기하다. 모든 게 끝나고 나면 한숨도 공포도 사라진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신발을 신고 경쾌하게 밖으로 나간다. 그 병원이 말도 안 되는 조밀한 예약으로 일정을 꽉 채울 수 있는 것도 인간의 그런 망각 때문이다. 한숨을 푹푹 쉬어대던 사람들이 잠깐의 마취 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쿨하게 수납한 뒤 제 갈 길을 간다. 나 역시 누가 내 자궁 입구를 봤냐는 듯 상피가 도려 졌냐는 듯 말끔한 얼굴을 하고 다음날을 살아간다. 적어도 다시 지독한 대기 시간에 시달릴 때까지, 익숙한 시트의 소독 냄새에 드러눕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기야 안다 한들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이 다시 온대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숨, 그리고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정도의 반복뿐일 것이다. 역시나 그런 것들. 내가 한들 하지 않은들 큰 차이 없는 최소한의 방어가 전부인 것들, 개인이 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반응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내게 주어진 운명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마도 그건 내게 주어진 운명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주일 전 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상황이든 운명이든 나는 고작 버둥거리다 받아들일 뿐이라고 일주일 전의 나는 말을 끝내고 있다. 뭔가 찜찜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축 처질 필요는 없지 않나. 게다가 그건 내가 살아온 방식도 태도도 아니다. 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예측할 수 있는 일만큼 생긴다. 쨍한 날 숲길을 산책 갈까 하는 마음이 들 때면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진다. 내가 예측하는 건 그친 뒤의 무지개와 질퍽일 땅 정도지만 무지개를 보는 건 생각보다 즐겁고 질퍽이는 땅을 피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아마도.

나도 안다. 이만큼 구질구질하게 변명할 정도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미하다. 그러나 뭐 어떤가. 평온과 안온처럼 한숨과 공포도 나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나무는 산사태로 뽑히면서도 하늘을 저주하지 않는다, 뭐 그 정도로 여긴다. 거기에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늘 나쁜 일만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난 늘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받아들일 만큼 받아들이고 아니면 퉤 뱉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역시 그건 내게 주어진 운명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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