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물이 경이롭다. 물은 자신이 만들어 낸 자국을 스스로 지우며 불규칙한 리듬에 맞춰 잠시 머무르는 듯하더니 이내 더 가까이 다가와 당신의 발목 아래에 길게 호를 그리며 조금씩 영역을 넓힌다. 당신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철썩, 한 걸음. 지구의 거대한 푸른 수조가 당신과 술래잡기를 한다. 철썩. 셋으로 이어질 두 걸음.
물은 달이 끌어당기는 만큼 몸을 살랑이며 확장시키고 푸른 물은 또 어딘가에 부딪혀 하얀 거품을 낸다. 흰 포말은 바다의 상처라고 당신이 되뇔 즈음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곧 비를 쏟아낼 듯 으르렁거린다. 순간으로 몸을 던져 바다에 닿는 비. 당신은 뭍으로 뛰어가 나무 지붕 아래에서 일렁이는 물을 관찰한다. 같은 물인데도 빛과 농도, 깊이, 그리고 충격에 따라 다른 색을 보인다. 암녹색, 검은색, 암청색, 연하늘색, 연회색, 잿빛, 흰색. 무수히 많은 색이 물에 담겨 일제히 당신에게 다가가고 문득 당신은 그 색과 선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 경이로운 순간을 어떤 도구로 어떤 사물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한다. 당신은 늘 그랬다. 어떤 순간이나 감각을 어딘가에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 그것은 당신의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세상의 경이를, 감사를, 상실을, 사랑을, 안부를, 변화를, 시간을, 단상을 아로새기고픈 욕구였다. 전갈과 황소, 별자리들을 그림으로 기록했다는 최초의 구석기 인류처럼 당신 역시 당신이 보고 느끼는 무엇인가를 그대로 옮겨두고 싶었다. 그렇기에 당신은 집중했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의 한 폭의 그림처럼 뚜렷한 경계도 없이 푸른 계열이 퍼지듯 배인 물과 하늘, 펄떡이는 생의 환희에 요동치는 생명들, 비와 바다가 부딪히는 소리, 구름의 이동에 따라 쏟아지는 비의 양 같은 것에.
어느 날 당신은 그날 본 바다의 그림을 그리고, 또 다른 어느 날의 당신은 모래 위를 구르던 작은 돌멩이의 석고 모형을 뜬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소묘와 소조, 감각을 총동원시켜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각각의 그림과 모형을 완성한 뒤 당신은 좌절한다. 그림과 모형은 그날의 아주 미미한 일부일 뿐이다. 당신이 감각한 물의 전신이나 빛이 조금도 가닿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얼굴을 간지럽히다 휘몰아치던 바람, 흩어지다 다시 껴안던 구름, 참지 못한 울음처럼 쏟아지다 그치던 비, 비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웃음, 푹푹 빠지던 운동화의 감각, 그날의 호흡, 자꾸만 얼굴을 숨기던 태양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담을 수 있을까. 당신은 생각했다. 자연은 언제나 실험적이고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러니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이라 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당신은 어떤 도구나 말로도 그날을 그대로 재생시킬 수 없다. 불가능하다. 영상의 미장센으로도 부족하다. 인간의 오감을 설득시키기에 그대로서의 재현은 한계가 있었다.
구름에 완벽한 형태란 없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색과 모양을 달리한다. 어느 하나 똑같은 거미줄의 구획도 없고 물고기 지느러미도 없다. 자연만큼 실험적인 조물주는 없다. 바다, 흙, 지구, 우주, 머나먼 은하계. 창조물의 항아리 안에서 당신은 어떤 영감을 얻었던가. 각자 다른 형태와 물질의 행성과 흙의 입자, 물과 뭍의 생태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던가. 한계 없는 가능성과 다양성, 수많은 시도, 정답과 오답의 부재를 당신은 과연 읽었던가. 당신은 다시 생각에 빠진다.
깔끔하게 당신이 지향하는 바를 포기하면 편하겠지만 예술은 당신의 본능이다. 인간은 본능을 버리고 살 수 없으니 어떻게 타협할 것인지,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지를 헤아린다.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문학의 최고 효용은 제한적인 절대성이 아니라 아낌없는 가능성을 지향한다.’고 썼다. 당신은 이 문장에서 문학을 예술로 바꾼다. '예술의 최고 효용은 제한적인 절대성이 아니라 아낌없는 가능성을 지향한다.' 고정된 시각을 비틀어 다양한 각도에서 지긋이 바라보기로 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당신의 해석으로 바다를 채우기로 한다. 당신은 그날에 다시 한번 몰입하고 재배열한다. 물의 은빛 몸, 푸른 물의 축적 혹은 파열, 시적인 시간, 물질세계의 허상, 이동하는 날씨, 달의 인력과 순환, 당신의 실험대에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고 그들은 당신의 예술 안에서 춤을 춘다.
이제 당신은 안다. 하나의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은 무수히 많은 면과 온도에 부딪혀 조각나고, 조각난 빛은 결코 같지 않다. 열 명에게는 열 개의 태양과 열 개의 바다가 있다.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푸른 태양을, 보랏빛의 태양을, 때로는 분홍빛의 태양을 만들기를 시도한다. 당신에게 떨어진 빛의 조각으로 당신만의 예술을 만들기로 한다. 그것은 하나의 문장 혹은 점, 휘날리는 천이거나 두 개의 색이 될 수도 있다. 여전히 당신은 실험한다. 당신은 당신의 감각이 타인에게 닿을 때까지, 당신의 전율이 타인에게 옮아 붙을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단지 하나의 빛의 조각일 뿐이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할지 고민하고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기억한다. 그날 쏟아지던 비와 바다의 진동이 그친 뒤 저 먼 하늘의 끝에서 무지개가 떴다. 지구 대기와 비가 남기고 간 물방울이 빛에 부딪혀 다른 파장의 빛깔로 분리된 결과였다. 공기와 수분과 빛. 단순한 일상의 원소들이 하나의 상징, 색의 향연이자 감동으로 광휘했다.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실험 예술, 아니 예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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