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긴 일기
그 애를 죽이려고 했다. 아마도 불에 태워서. 살던 여관에 불을 질러 죽여야지, 사람보다는 동물을 구하러 뛰어 들어갔을 그 애를 죽이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야지, 하고 말이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첫 단편을 썼을 때도 그랬다. 죽이려고 생각한 사람을 꾸역꾸역 살려놨다. 소설 내 택시 기사에 빙의해 다리 아래로 뛰어드는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마도 이런 마음. 인생이란 게 참 시시하지만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죽음은 한순간이고 인간은 필멸할 텐데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살아보면 어떻겠습니까, 같은 결국은 책임질 수 없는 타인의 마음. 문장일 뿐인데도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인데도 문득 난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죽이려다 차마 죽이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처음엔 죽이려고 생각했던 사람. 그게 난가 하고 말이다.
이주 동안 잡고 있던 단편을 끝내고 일찍 일어나 거실 청소를 했다. 닫힌 피아노위나 책 모서리, 아마(아니 분명) 내 폐에도 고양이털이 나뒹군다. 이렇게 매일 쓸지 않으면 우린 고양이털에 묻혀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잔뜩 쌓인 눈을 밀치듯 제설기로 털을 밀어내고 집 안에 좁은 골목을 만들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은 사양이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혹은 제자리일 법한 곳에 두고 다시 털을 치운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고양이의 털과 특유의 냄새를 기르는 것과 같다. 그들은 차곡히 벽지에 딸기잼뚜껑에 선반에 피부에 이불에 쌓여간다. 또 기르는 것은 익숙해지는 것과도 같아서 고양이 동거인에게 딸기잼통의 털이나 현관에서부터 스멀스멀 밀려오는 고양이 냄새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비동거인에게는 경악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 이게 뭐야 하는 말도 없이 밥풀에 붙은 털을 떼고 구석구석에 숨겨진 털 뭉치를 찾는다. 그리고는 돌돌 말아 저 멀리 던진다. 피슝, 살찐 고양이의 날카로운 습성은 어김없이 털 공을 쫓고 그 뒤로 펄펄 털이 눈처럼 날린다.
원래는 청소를 하고 바로 앉아 글을 쓰려고 했다. 미뤄둔 글. 쓰려고 하다 짧은 문장으로만 남은 글을 메우고 채워야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차가 마시고 싶었다. 찬장 제일 위에 고이 모셔둔 새 전기 포트를 꺼내고 박스와 비닐을 뜯었다. 딱 일 년 전에 산 것으로 온도 유지가 되는 티메이커다. 처음 쓰는 거니 베이킹소다를 넣고 팔팔 끓이다 바닥은 스테인리스라 전용 세척제로 또 씻었다. 나는 손이 느리다. 시드니 요크 스트릿 York st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할 때도 손이 느리다고 엄청 혼났다. 빨리빨리, 빨리빨리. 한국인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그 말을 계속 나에게 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그는 프랑스사람이었는데도. 빨리빨리 빨리빨리.
하여튼 글 쓴다던 사람은 어디 가고 나는 한참을 전기포트 씻는 데 시간을 썼다. 그리고 씻은 포트에 올해 초 제주도에서 산 보이와 귤피를 섞은 차를 팔팔 끓였다. 차가 마시고 싶었으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도 되었을까 생각하지만, 아니다. 온수로는 이런 진득한 맛이 나지 않는다. 쓰지 않는 물건을, 그것도 심지어 방치된 새 물건을 꺼내 쓴 건 장한 일이다. 뭐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애를 쓴 것은 어떻게든 돌아오지, 그런 마음이기도 하다.
거기까지는 좋았을지 모른다. 청소를 하고 포트를 씻고 책상에 앉기까지는. 그러다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기까지는.
수고스러운 물건이 있다. 날 아껴줘, 너의 마음을 시간을 써줘 하는 물건들. 말없는 부지런함을 요하는 물건들. 이를테면 쓸 때마다 펜촉이 굳었나 보고 굳었으면 미지근한 물컵에 담아 풀어야 하는, 만약 채워진 잉크가 없으면 잉크를 채우는 수고마저 해야 하는 만년필 같은 것 말이다. 하필이면 막 앉은 그 찰나에 오랜만에 만년필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왜 굳이 지금 이때에 같은 생각은 필요 없다. 만년필로 한 단어라도 쓰지 않으면 오늘 하루는 진전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른 찾자. 머리를 쓰지 말고 몸을 쓰자. 한 번의 손가락압력으로 쉬이 쓸 수 있는 수많은 볼펜을 뒤로하고 얼른 수고스러운 만년필을 찾자.
나에겐 두 개의 만년필이 있다. 하나는 진분홍의 라미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클래식한 검정의 워터맨 제품이다. 진분홍은 몇 년 전 생일에 기프티콘으로 받은 것이고 검정은 대학 졸업식에서 모범상으로 받은 것이다. 그날을 기억한다. 잦은 휴학에 오래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던 날 엄마는 대구에서 올라왔고 동생도 함께했다. 가족이 함께한 첫 졸업식이었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서 꽃을 받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졸업식장에서 호명되어 삐걱이는 걸음으로 연단에 섰다. 대학교 총장은 나에게 상장과 만년필을 주며 이름이 참 멋지네 하고 말했다. 처음으로 내 이름이 멋진가 생각했다. 사진 찍었어? 엄마와 동생에게 물어보니 찍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찍는다 한들 다시 보진 않았을 테지만 아쉬웠다. 이름이 참 멋지네. 이름이 내가 된 듯 멋지게 살아야겠다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사실 내게 모범상은 흔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상은 어떤 의미로 나의 도피에게 주는 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스물에 연극을 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갔지만 첫 연극에서 큰 실수를 했다. 다시 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낮은 자존감에 지금 말하는 회복탄력성도 없었다. 영화 이론만 배우다 복수전공으로 일본어를 선택했다. 연극의 무대보다 도서관만 찾았다. 모범상. 어쩌면 도피의 상. 그것은 그렇게 받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게 또 싫지만은 않았다. 덕분에 이름 참 멋지네, 그런 말도 듣고. 그래서 그냥 그랬다는 사실만 이 펜을 상징으로 갖고 있다.
종이컵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펜촉을 넣었다. 진한 풀물 같은 색이 투명한 물에 점점 퍼진다. 이전에 충전한 세일러의 시키오리 잉크다. 이름은 리큐차(利休茶・りきゅうちゃ). 펜으로 쓰기 시작할 때는 짙은 녹색인데 점점 마르면서 갈색 빛이 오른다. 잉크의 냄새와 색이 점점 퍼진다. 충분히 풀어진 펜촉을 닦고 가운데를 열어 카트리지에 잉크를 충전한다. 검정으로 보이는 잉크가 쭈욱 빨아들여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것은 결코 검정이 아니다.
날이 한낮으로 치닫는다. 하려던 글은 어디 가고 난 결국 이런저런 것들의 청소만 한 셈이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다가 이러기만 하면 어쩌지 한다. 그리고 누군가 쓴 글(사실 이분은 음악의 달인 같은 분으로 챙겨 읽는 작가분들 가운데 한분, https://brunch.co.kr/@b27cead8c8964f0이다. 나에게는 음악계의 하루키 같은 분)을 읽다 하몬드 오르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몬드 오르간이 내는 소리를 알게 된다. 하몬드 오르간과 일렉이 만나는 소리를 알게 된다. 이런 떨림이 있다니, 이런 소리가 있다니. 역시 모르는 게 천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쓴 글의 주인공들에게, 내가 쓴 시시한 인생을 사는 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이런 게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음악, 이런 소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살아 봅시다. 어쨌든 어떻게든 우리 살아내 봅시다. 뭐 그렇게.
참, 노래제목은 상도 블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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