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저 나무는 삼촌 친구야? 하는 대사를 듣고 너를 생각했어. 네가 그랬잖아. 우리는 종종 상대에게 '왜'를 묻지만 때로 그런 질문은 상황을 풀어내기보다는 힘껏 엉킨 빨래처럼 만든다고 말이야.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러는지 실은 자기도 모르거든.
너는 그렇게 말했지. 사람들은 겹겹이 쌓아온 습관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뿐이라고. 인간은 마치 자신의 행위가 효율과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야, 익숙함의 결과일 뿐. 그렇게 그렇게. 그리고 너는 말했던가. 상대에게 '왜'를 묻기보다는 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왜 그랬어? 보다 더 직접적이고 총체적인. 그런 뒤에 너는 어땠어? 보통 어떤 상황에서 너는 그런 감정을 느껴? 조금은 둘러가듯이 조금씩 잠기듯 알아가듯이.
묻는 건 어려운 거 같아. 대답도 마찬가지고.
어떻게 지냈어? 하고 오랜만에 마주 선 네가 물었을 때 바로 대답을 못했던 건 사실 나의 안녕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그걸 어떻게 얘기할지. 아니 애초에 나는 정말 어떻게 지내왔던지 머릿속이 복잡했어. 하루 스물네 시간 상태나 상황은 수도 없이 변하는데 우린 아주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벌이고 벌여진 일들이 여름 장맛비처럼 쏟아지고 난 꼭 그 빗속에 서 있는 것처럼 얌전히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내가 한 대답은 시시했어.
"잘 지냈어, 제대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충분하게"
사진은 순간의 박제품, 실내가 비치는 투명한 화장실의 잠금장치, 무언의 춤, 동전과 열쇠, 그림자의 음영, 나무의 우듬지와 그 사이로 비치는 햇빛, 그리고 그 질문.
저 나무는 삼촌 친구야?
조금 전 혼자 영화를 보며 끄적인 말들이야.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듯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오늘 본 영화의 주인공도 그랬어. 꼭 혼자의 달인처럼. 꿈에서 그림자의 음영과 자국을 보고 식물에 물을 주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자신의 생에 충실하지만 겉에서 보면 별것 없는 일의 반복이지. 그러나 역시 그에게는 전부이자 완벽한. 그리고 혼자인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혼자는 아닌. 그래, 우리의 서글픈 빛을 끌어 안고.
다시 첫 문장으로 갈게. 저 나무는 삼촌 친구야? 하는 조카의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응, 내 친구야.'라고 말해. 마음을 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나무와 잎, 빛, 타인과의 눈인사. 모든 것이 친구가 될 수 있을 테니 하긴 혼자는 아니려나. 아니, 그 모든 것을 친구로 둘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혼자의 달인이려나. 그리고. 딱 영화의 이 부분에서 너를 생각했어. '왜'가 빠진 질문에서, 질문의 여운에서. 사실 난 나무의 사진을 찍는 주인공을 보고 건넨 조카의 물음이 "삼촌은 왜 나무 사진을 찍어?"가 아닌 "저 나무는 삼촌 친구야?"여서 조금 기뻤거든. 좋은 질문이란 저런 건가, 조금 기쁘게 만드는, 그렇게 생각했어.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대사야. 기약 없는 말 같기도 하지만, 묘하게 이 말이 주는 안도감이 있지 않아? 지금은 우리 함께니까, 지금은 우리 이렇게 생생히 마주 서고 있으니까. 나중의 걱정이나 즐거움은 다음에 하자. 그냥 지금은 가볍게 지금을. 찬란하게 서로의 나날을 살다가 또 언제 만나자. 좋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우리, 지금을 기꺼이 살자. 그리고 또 다음에, 우리 만나. 역시 그렇게.
추신.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정말 좋더라. 영화를 켜놓고 소리만 들어도 좋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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