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그까짓 유치원

by 윤신


행복에 겹다.

아이가 지원한 아니 갈 수 있는 유치원에 모두 떨어지고 나서야 아, 정말 큰일 났다 하고 잠까지 설치는 중이다. 그러면서 참 나도 행복에 겨운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잠 설치며 괴로워하는 이유가 고작 그거라니. 고작 유치원을 기다리는 마음이라니. 하지만 보내고 싶은 유치원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어디든 받아주기만 하면 보내려는데 이곳은 아이가 넘쳐흘러 보낼 수 있는 곳이 없다. 교육지원청에 하소연하니 이제 짓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지어 언제 내 아이를 보낼까.


유치원에 전화를 돌리며 날이 서서 엄마, 엄마 나를 부르는 아이에게 뾰족한 말을 한다. 잠깐만 좀. 기다려. 왜 이래 정말. 그 속에는 지금 니 앞길로 내 머리가 터질 지경이야가 숨어있지만 정말 그럴까. 나의 이 긴장된 불안이 아이의 앞길과 더 연관 있는 건 아닐까. 교육이고 뭐고 내 몸과 마음이 더 피곤할 걸 우려하는 건 아닐까. 유치원 까짓것. 그까짓 유치원. 남들 다 가는 거 안 가면 어떻다고. 다른 방도를 구하면 어떻다고.


칠 년째 영종도는 애 키우기 좋다고 입에 달달 매고 다녔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무엇보다 집값도 싸고. 그래선지 애들이 흐른다. 놀이터에 길가에 하늘에 나무 위에 막 떠다닌다. 나라에서는 애가 없다는데 여기는 왜 이럴까. 나라님, 아마 살만한 곳에 집값을 낮추면 거기가 바로 애 태어나고 키우기 좋은 곳일 겁니다. 집값을 낮추세요. 여기는 애가 기본이 둘셋이에요. 아홉도 있대요. 그나저나 생각한다. 애 키우기 좋다는 말이 꼭 내 애 키우기 좋다는 건 아닌가 보다고.


하지만 역시 행복에 겹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고민하는 인생은. 누군가의 고통이나 아픔이나 생존이 아니라 아이의 유치원을 골몰하며 시간을 보내는 인생은 행복에 겹지 않은가 하고. 타인의 잘린 다리와 베인 손가락을 비교하지 않아도 이 정도 고민의 가벼움은 알아채야 하지 않나 하고. 아마 그래도 어려운 건 다른 사람과의 (다른 사람의 아이와의) 비교에서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또 나의 부족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하는 자책.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유치원 추첨에 떨어진 것은 나의 아이뿐이고 다른 엄마들과 교류를 하지 않으니 어떤 정보도 몰라 추가로 추첨하는 남은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 혼자 책 볼 시간에 엄마들을 만났어야 하나. 이제 와서 해도 소용없는 후회 같은 찌꺼기 감정이 남는다.

비교와 자책이 유치원 입소까지 얼굴을 비집고 들어올 줄은 몰랐지만 하기야 그들이 끼어들 자리가 정해져 있을까. 마음이 자리한 곳이면 어디든 끼어들지 걔네들은.


그러니 마음을 비울 일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겨울이 슬슬 물러날 이월이 되고 봄이 머리끝을 비추는 삼월이 되면 뭐가 어떻게든 정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할 일이다. 그리고 이 가벼운 불행을 둘러쓴 행복을 그때까지 잘 다독여 봐야지. 늘 그랬듯.

어이, 진정해. 멀리 봐선 모를 일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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