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화

by 윤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좋아하는 꽃집이 있다. 가게 이름은 도깨비 호떡. 쇼윈도 너머가 아닌 떡볶이와 순대, 튀김 냄새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이며 꽃을 고를 수 있는 곳으로 동네 떡볶이 맛집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거기서 꽃을 파는 시기는 오로지 봄. 이월의 끝에서 오월의 초까지 열 가지도 넘는 종류의 꽃이 슬러시 기계 앞에 명랑히 피어 있다. 빅토리아 크러쉬, 피에스타, 마담 골리아, 베이비퍼퓸(-여기까지 장미들이다), 미스티블루, 갖가지 형태와 색의 소국, 스타티스, 유칼립투스, 스토크, 리시얀셔스, 수국, 그리고 프리지어. 호떡집 사장님이 하루 한번 혹은 이틀에 한번 새벽 꽃시장에서 데려오는 아이들이다.


나는 아직 새벽의 꽃시장에 가본 적이 없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한낮보다 푸르고, 투명하게 둘러싼 식물의 집 안은 싱그러울 것이다. 어떤 마음일까. 아직 밤의 짙푸른 기운이 맴도는 새벽, 환하게 진열된 초록의 낙원에서 제각각의 꽃을 온몸 가득 골라 돌아오는 기분은. 가게 불을 켜고 커다란 양동이에 물을 가득 붓고 빈틈없이 꽃을 심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손끝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털고 떡볶이 조리대에 물을 다시 한번 가득 붓는 하루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서 있을 때면 언제 봄이 올까 기다리지만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어느새 기다렸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다. 나 역시 매번 누군가의 손에 들린 노오란 프리지어를 보고서야 아, 봄이구나 알아챈다. 그렇다, 프리지어. 프리지어를 보면 봄이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꽃집을 떠올리고 프리지어 한 단을 살까, 아니면 어려운 이름의 낯선 꽃을 몇 송이 살까 고민한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고 나의 그 꽃집은 떡볶이와 튀김, 호떡만 팔고 있다. 길가에는 아직도 덜 녹은 회색의 눈이 쌓여있고 어제는 비와 섞여 내리던 눈이 어느 순간 펄펄 내리기까지 했다.


「오래된 생화 나눔 합니다.

떡잎 정리하면 며칠은 볼 수 있어요.」


일주일 전인가 근처 화원이 SNS에 저 문구와 함께 꽃 사진을 올렸다. 노랗거나 분홍인 튤립, 여러 품종과 색깔의 장미, 심지어 푸르고 흰 장미, 리시안셔스, 아네모네, 몇 개의 이름 모를 꽃들. 오래되었다는 말이 없었다면 별 생각이 들지 않았을 그저 아름답고 화려한 송이들이었다. 오후에 가서 받아도 될까요? 조심스레 묻자 사장님은 오시기 전에 연락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후 네시쯤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그곳을 찾았다. 개가 짖고 해질녘이면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가 나고 또 어딘가는 닭도 키우는 구도로舊道路 쪽이었다. 한참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이제 꽃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 낡은 빛이 도는 리시안셔스와 역시 조금 잎이 바랜 장미를 골랐다. 하루 이틀 잠시 집안을 환하게 해 줄 꽃들, 색채들, 생명의 조각들. 조금 시든 장미의 꽃잎은 모두 떼어내 아이와 하늘로 뿌리며 놀았다. 눈이다. 꽃눈이다. 두 손을 펼쳐 들어 내리는 꽃비를 맞았다. 반절은 얼마 전 이사 온 지인에게 건넸다. 우리 예쁜 건 함께 봐요. 고작 며칠이겠지만 잠깐이라도 함께 해요. 그런 가벼운 마음. 그녀는 오래된 생화라는 단어에서 소설의 이야기가 새어 나올 것 같다고, 좋다고 했다. 시들었어도 꽃은 꽃이라 했다.

나는 혼자 오래된 생화라는 단어가 성립된다면 오래된 인간이라는 단어도 성립될까.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래된 생화. 오래된 생화. 단어에서 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아마 이삼주만 지나면 나의 그 꽃집에도 꽃들이 얼굴을 내밀 것이다. 떡볶이와 순대와 튀김, 호떡 앞에서 흐드러지게 찬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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