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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제 몸의 선과 면을 갈라 나에게로

by 윤신



마침내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절정으로 치닫고

나는 그만 사랑에 빠졌다



전석이 스피커를 향해 있는 의자에 앉아 작고 가벼운 노트에 문장을 휘갈겨 썼다. 음악이 바뀌자 문장은 시가 되려다 멈췄고 나는 적당한 농도의 밀크티를, 옆에 앉은 그녀는 시나몬 향이 강한 홍차를 마신다. 여기는 21세기의 카메라타. 사람들은 나란히 배열된 좌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눈을 감거나 뭔가를 생각한다. 사소한 것에서 장대한 것까지 우리는 생각으로 우주까지도 갈 수 있다.

이것 봐. 책에 얹은 손이 떨리고 있어.

그녀가 말하고 나는 공기와 음의 진동으로 몸을 떨고 터는 공간을, 그 안의 사물을, 우리를 바라본다. 이 떨림은 공기가 움켜쥐는 희열인가 울음인가. 아니면 희열에 가까운 울음. 까무룩 높은 천장의 벽에는 인물을 그린 초록색의 커다란 유화 몇 점이 있다. 유화의 인물들은 오직 정면만을 바라본다. 어쩌면 그들은 평생 볼 수 없는 자신의 얼굴을 이층 유리에 비춰 응시하려는 지도, 아니면 곁의 얼굴에게 말하려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1920-30년대의 극장 스피커로 나오는 음악은 몸집이 거대해서 피할 데가 없다. 맨 끝자리나 벽 뒤, 건물의 이층에까지 음악은 귓바퀴를 비집고 음계를 들이민다. 숨을 수 없다면 온전히 즐기라던가. 애초에 이곳은 그것을 위해 무에서부터 태어났다던가.

처음 우리가 들어갔을 때 흘러나온 곡은 매들린 페이루 Madeleine Peyroux 가 부른 La Javanaise. 그리고 한동안 협주곡이나 교향곡이다가 퀸시 존스와 오케스트라의 Quintessence. 트럼펫 소리가 잔뜩 화가 난 자동차 경적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만약 이런 공간에서 Paul Riedl의 Quintessence 같은 앨범을 들으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몸이 공중에 뜬다. 살결에 물결이 밀어친다.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후.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가벼운 갱지 노트에 그림을 그리듯 시를 썼다. 쓴다기보다 조각한다. 내가 느끼는 원형의 감각에 가닿기 위해 언어를 깎아내고 낱말을 새긴다. 어제 시를 말하던 Y는 시를 쓰는 사람은 그 순간 신神이 된다고 했다. 시의 서사에서 인물을 만들어내고 욕망을 실현할지 실패로 이끌지 뭐든 선택할 수 있는 신神. 신이 되지 못한 나는 조각가가 되어 끌과 망치를 든다. 나에게 왔다 간, 머무는 빛과 그림자를 문장으로 새긴다.



들리는 것과 듣는 것은 달라서

누구는 절망에 누구는 환희에 누구는 안도에 그러나 나는 사랑에


모두 함께 겹을 쌓아 모아 내뱉는 희고 검은 숨과 휘몰아치는 격정에

눈이 붉어진 침묵이 눈을 감고 읊조린다


이것은 고립

이것은 치유

이것은 환락

이것은 천국

이것은 신의 합창을 듣지 못한 인간들의 기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몰라서 모르기 위해서

그들의 말에 드디어 양의 내장을 뜯어말린 현의 울림이 대답한다

-너희들은 가련하고 가련해서 가련하기 위해서


침묵이 눈을 뜨는 사이

소리는 제 몸의 선과 면을 갈라

나에게로 또다시 나에게로 얼굴을 기대고

나를 들으렴 나를 안으렴 나를 쓰다듬으렴

나를 먹어 너를 채우렴

이제 나는 침묵처럼 눈을 감고


음악을, 떨리는 진동을 흐르는 어둠의 공명을

입으로 삼킨다

나를 던진다



자리에서 일어서서야 끌과 망치를 내려놓았다. 음악은 여전히 흐르지만 제목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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