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쓴 일기입니다
교회의 종이 울렸다. 한 할머니가 뛰쳐나오며 종을 치면 안 된다고, 그 종은 삼종기도 때나 누군가 고인이 생겼을 때에만 친다고, 그렇게 종소리가 울리면 동네의 누군가 죽었다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수하듯 종에 매달린 줄을 놓으며 미안해요, 몰랐어요라고 크게 소리 질렀다. 할머니는 꽤 멀리 있었고 종소리는 아직도 낮게 퍼지는 중이었다.
어두운 청동의 종은 엄격한 청교도 신자처럼, 꼭 필요한 말만을 부득이 꺼내 올리는 수행자처럼 한참의 탑 꼭대기에 매달려 있었다. 줄을 당기면 종이 날아갈 것 같아 줄을 당겼다. 손때가 묻어 회벽색이 된 손잡이가 배꼽까지 내려오도록, 다시 못 볼 사람의 손을 쥐듯 힘껏. 종은 날아가는 대신 생각보다 깊고 낮은 소리를 냈다. 인간의 근원에 닿아 뭔가를 고백하게끔 만드는 소리였다. 종은 원래 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 혹은 누군가 죽었을 때만 울려야만 했다. 누구도 죽지 않은 화요일 오후 두 시 그러나 소리는 울렸다. 아주 작은 마을, 신앙도 없는 내가 당겼음에도 소리는 울렸다. 나는 몰랐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것이 아닌 무엇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더군다나 종교의 공간에서 그러면 더욱 안 되는 것을 나는 분명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줄을 당겼고 종은 생각보다 깊고 낮은 소리로 나의 바로 머리 위에서 진동했다.
겨울이 막 시작하려고 하던 시간.
거짓말을 하고 금기를 어겼지만 이게 처음은 아니지.
종소리가 울리던 공기에 몰래 고해하던 시간이었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낱장의 달력이 2월이다. 지금은 4월이고 3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삼월은 달리기 선수네.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쳤다. 제목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전작에 홀려 고른 책이었다. 해야 할 것을 모두 미루고 하고 싶은 것을 외면할 때면 나는 책을 읽는다. 잠들기 전 읽는 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렇다. 책을 읽다 세 번째 페이지 '정오에 삼종기도 종이 울리면'이라는 문장에서 멈췄다. 지나가다가도 다시 돌아갔다. '정오에 삼종기도 종이 울리'는 그 소리를 나는 알지. 어르고 달래는 부드러운 그 소리를 나는 알지. 소리가 시간을 넘어 귓가에 빙글거렸다. 물가에 던진 돌멩이 주위로 넓게 퍼지는 파랑 같은 소리. 그것이 공간과 계절을 지나 눈앞에 다가섰다. '정오에 삼종기도 종이 울리면'이라는 글자의 몸을 입어 나에게 나타났다. 나를 친 게 너지. 여섯 시도 정오도 아닌데도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도 나를 친 게 너지. 나는 대답도 없이 그 문장만을 쳐다봤다. 읽으면 문장이 날아갈 것 같아 다시 읽었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책 제목을 떠올렸다.
나 자신이 이 인류의 한 부분이니,
누군가의 죽음은 곧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마라.
그것은 곧 너 자신을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
순간과 시간을 넘어 초겨울의 종소리가 나에게 왔다. 금기를 어기고 울려진 소리. 또 다른 금기들을 떠오르게 한 소리. 삼종과 조종(죽음을 애도하는 종)이라는 약속을 어긴 또 다른 나의 거역.
첫 문장에 나는 '종이 울렸다'고 썼다. 글을 고치며 '종을 울렸다'라고 쓰려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나는 종을 치기만 할 뿐 몸을 떨어 우는 것은 종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너 자신을 위해 마침내 몸을 다해 우는 것은.
*존던의 기도문 17. Meditations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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