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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pr 12. 2024

밤의 아쿠아



  화자는 피아노를 쳐요. 도를 누르자 파, 파를 누르자 미(시인은 손으로 피아노 치는 흉내를 낸다). 음이 자꾸 엇나가지만 화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미묘하게 어긋나는 감각과 이어지는 불안함. 그리고 마침내 불타는 집을 보는 화자. 이거 마치 히치콕 영화 같지 않나요. 나는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다. 피아노 레슨과 불타는 집의 연관성은커녕 이 시에서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니 (시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니)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탓이다. 시인은 이 시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아는 것이 손에 듯한 감각이라면 나는 지금도 이 시를 모른다.

  말하자면 이 시의 근간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받았을 피아노 레슨과 집이 불타는 경험의 부조화, 이탈. 이런 것들이에요. 시인의 말을 필기하며 멍한 얼굴을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시는 다섯 줄이던가 여섯 줄이던가 그랬다. 제목은 레슨이었다. 내가 읽은 시보다 시인이 들려주는 시가 훨씬 좋아 밤마다 이렇게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밤새 시의 언어들이 꿈에 드나들지 않을까. 어젯밤 꿈에는 다 낡아빠진 중고차를 샀던 것 같은데. 그런데 피아노 레슨이 흔한 유년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시인은 보통의 인간이 공감할 보통의 소재와 그에 대비되는 소재를 섞어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냈다. 나는 단 한 번도 건반에 손을 댄 적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돋을볕이 한참이나 사라지고야 눈을 뜬다. 요즘은 그렇다. 뭘 하지 않았는데 피곤하고, 뭘 하지 않았다는 무력감에 불안하다. 피니시 라인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무한 반복. 어제는 이어폰으로 팟캐스트를 들으며 자수를 놓았다. 밤부터 자정까지 실로 그림을 그리며 불안을 달랬다.(뭔가를 하면 사라질 줄 알았던 불안은 확고한 대상-아마도 글쓰기-이 있던 모양인지 그 대상 외의 뭔가로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어폰 속 목소리들은 영화 괴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사운드트랙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에 이르렀다. 수다 사이사이에 이어지는 피아노와 현의 곡, 그리고 아쿠아 AQUA가 흐를 때인가 나는 바늘을 멈췄다. 바늘이 멈췄다.



  이 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Back To The Basics이라는 99년 앨범의 곡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역시나 다시. 나에게는 그렇게 읽혔다. 시작으로만 끝내는 게 아니라 거기서 다시 시작되는 모든 것으로 읽혔다. 피디의 목소리는 떨리고 벅찬 음성으로 변주되는 해석과 영화 속 이 곡을 듣고서야 안착했던 자신의 심정을, 보통 마침 종지로 쓰이는 화음을 시작으로 쓴 마음 같은 것을 이야기했다. 밤의 아쿠아. 기도처럼 나직한 곡은 지나간 장마 한 시절을 불러냈다. 그날의 냄새가 습도가 비가 방 안을 채웠다. 그리고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화자는 피아노를 쳐요. 누구나 한 번쯤 받았던 피아노 레슨 가운데서요. 나는 단 한 번도 레슨을 받은 적도 없고 악보도 볼 줄 몰랐지만, 건반에서 겨우 '도'만 찾을 뿐이지만, 이 곡이 치고 싶었다. 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쉬이 물러나지 않던 장마의 온도와 습도 속에서 나를 달래던 곡을 내 손가락으로 불러내고 싶었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우리 집엔 한밤에 시를 읽어주는 사람은 없어도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있으니 게다가 우리 집엔 피아노도 있으니 어떻게든 하면 되지 않을까. 피아노를 치는 그에게 물었다. 나, 이 곡 칠 수 있을까? 도는 찾을 수 있는 실력이야. 그걸 실력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악보 첫 줄(다른 음악적 용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의 오른손 음을 쳤다. 뒤따라 내가 쳤다. 내 손가락들이 몇 번의 움직임으로 환희를 만들어 냈다. 솔시레 레 솔미 도 솔시레 레 시솔 솔 시파 레 솔미. 이것만 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빛나는 환희였다.

  

  보통의 소재는 어렵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무엇'이 과연 있기나 할까 생각하던 나는 결국 점심밥을 소재로 삼았다. 너도 먹고 나도 먹는 점심밥이 시어로 적당한 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시인이 읽어주던 시의 화자가 음이 엇나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를 쓰고 제목을 지었다. 제목은 '월요일 점심은 두부전골이었다'였다.


  시 수업을 들으며 시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꿈에 가까운 것이 생겼다. 아쿠아 연주하기. 겁도 나고 걱정도 되고 벌써부터 좌절도 되지만 어쨌든 기쁘다. 화자는 피아노를 쳐요. 도를 누르자 파, 파를 누르자 미. 이제 그건 시의 이야기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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