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월 아직은 오월

by 윤신


백당나무 꽃을 본 적이 있나요. 자잘한 잔꽃 주위로 흰나비를 닮은 꽃잎이 곁들여 피어난, 사오월 즈음 라일락과 수국, 아카시아, 모란, 등꽃들이 제철일 때 함께 피는. 그런데 사오월 이라니. 꽃의 입장에서는 한숨만 나오는 달일 것 같아요. 이 날을 위해 겨울의 끝자락부터 차곡차곡 적산온도를 채웠더니 이게 뭐람. 저기는 소담한 사슴 꼬리 같은 수국이, 저기는 향의 대명사인 라일락과 아카시아가, 또 저기는 푸른 보랏빛이 다래다래 늘어진 등꽃이, 아니 또 저기는 세상 화려한 볼륨드레스를 입은듯한 모란이. 내가 꽃이라면 어떻게든 사오월은 피하고 싶을 거예요. 조금만 더 참아 가을을 노려볼까 하면서 말이죠.


작년 이맘때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수국이 지천이었습니다. 연둣빛 싱둥하고 조밀한 꽃은 청신한 단발머리의 아이를 닮아. 꽃대를 두 손으로 감싸거나 뭉게뭉게 진 아기 구름 같은 꽃을 보다가 한 계절을 보냈어요. 그런데 올해는 가고 오는 길이 달라져 뭇풀과 파, 고추, 가지, 토마토, 이런 채소들이 줄을 선 밭을 지납니다. 채소밭에 수십 마리의 까치들이 모여 놀아 아이는 그곳을 새 놀이터라고도 부르고요. 오늘도 아이를 버스에 태우고 새 놀이터를 지나는데 어쩐지 힐긋, 오늘따라 어느 흰 꽃이 눈에 띄었습니다. 매일 그 자리에 있었지만 잘 알지 못하던 누군가를 알아보고 귀 기울이고 안아보고 싶은 마음. 봄부터 피어나는 동그맣고 빨간 꽃의 나무 이름이 '명자나무'란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명자야, 명자야, 부르며 길을 걸었던 것처럼 저 흰꽃의 이름을 부르며 이 시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 예쁘고 좋은 것들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 그런 게 사랑의 시작이라면 시작이겠고요.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꽃이려니 싶던 얼굴이 가까이서보니 어쩌면 이렇게 생겼을까 놀라게 됩니다. 꽃의 모둠이 또 하나의 꽃을 이루는 꽃. 산수국처럼 자신 스스로 하나의 화원을 만드는 꽃. 찾아본 꽃나무의 이름은 접시꽃 나무라고도 불리는 백당나무였습니다.


하긴 꽃은 그런가요. 곁에서 누가 피던 자신만의 꽃을 피운다던가요. 봄 꽃은 봄을 기다리고 여름꽃은 여름을, 겨울꽃은 겨울을 기다리며 제 안의 온도를 채워나간다던가요. 가까이 마주한 백당나무를 보며 너 정말 사오월을 단단히 각오하고 피어났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 테지요. 백당나무는 자신이 피울 수 있는 꽃을 피운 것일 뿐. 모든 꽃과 나무가 그러하고 그래서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지도, 닮고 싶은지도.


벌써 오월. 곧 이들의 순번이 지나고 또 다른 생명의 순서가 다가오겠지만,

아직은 오월. 사오월의 꽃과 풀 안에서 당신 그대로 사랑하시기를

꽃처럼 바라고 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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