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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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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01. 2020

낯설지만 나는야 엄마

천천히 빠지는 사랑의 이름, 20191028 





이른 오후, 안산 엄니(시어머니의 별칭입니다)가 물어온다.



"아직 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나도 그랬어. 처음 아기를 낳고 엄마가 해줄게~같은 말을 하는 내가 얼마나 쑥스럽던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나 역시 자신을 엄마라 지칭하는 게 아직 너무나 낯설다. 

으-앙 울어대는 아기에게 '엄마가 갈게, 엄마 여기 있어.' 하는 몇 초의 찰나에도 '엄마? 내가 엄마라니. 세상에나.' 따위의 생각을 한다. 물론 찰떡이는 우리에게 개인적인 창세기와도 같아 그 전과 후의 일상에서부터 삶의 내용을 확 바꿔버렸지만 그 사실이 내게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을 가져다 주진 않았다. 



"저도 꼭 그래요. 그럼 언제 실감이 나게 될까요?"

"찰떡이가 '엄마'라 부를 때지."



아하, 고개를 끄덕인다.

스스로 이름 붙이기 어색한 새로운 역할에 자연스러워지는 방법은 타인의 인정이구나. 그것도 그 역할을 가져다준 사람의 인정. 아기가 내게 준 역할이니 아기가 명해줌으로써 어색하지 않게 되는 거야.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또 하나 궁금해진다. 



"그럼 할머니가 되는 건 어떤가요? 그것도 처음엔 '엄마'처럼 어색한가요?"

"아니, 전혀 달라. 기다렸단 듯이 한 번에 할머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돼. 그리고 그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흠, 그건 또 다른 일이구나. 엄마가 되는 일에도 아직 버벅거리는 나로서 할머니의 심정은 짐작조차 불가다. 그저 처음이 어색한 엄마와 달리 할머니의 처음은 자연스럽구나 생각할 뿐이다. 천천히 빠지는 사랑이 엄마라면 금방 빠지는 사랑은 할머니인 건가. ‘빠진다’를 ‘익숙해진다’로, ‘사랑’을 ‘사람’으로 바꿔도 말이 되고 말이지.



그녀의 물음에 안도한다. 

이 쑥스러운 어색함이 나 혼자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는 것도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능숙하고 여유로운 사람에게마저 그런 시간이 있었구나,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그녀처럼 현명함과 따뜻함을 품은 할머니가 될까. 모를 일이다. 우선은 아직 어색한 엄마의 이름에 잘 스며드는 게 먼저다.



그나저나 저 앙증맞은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언제 '엄마'라 이야기할까. 

후후. 그건 더욱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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