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시를 지어 보냈는데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는 꿈이었다. 시도 짓고 밥도 짓고 집도 짓고 다 짓는 거네요. 떨어졌다는 말에 나는 대충 그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도 짓고 밥도 짓고 집도 짓고, 그런데 왜 그런 건 다 지어야 할까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붙게 되면 이쯤 결과를 알려 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다섯 편의 시를 보낸 곳에서 연락이 없다. 작년엔 소설 쓰기에 빠져 있다가 올해엔 시 쓰기에 빠져있다. 예전엔 지나친 빈도로 온갖 사물과 사람에 빠지기도 했다. 빠지지 않고서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을 나는 모르는 게 아닐까. 발등을 기어오르는 개미를 보고 짧은 시를 떠올리고 회현목의 가지를 보며 시어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한다고 입안에서 글자들이 태어나는 건 아니고 뱉는 말들이 시도 아니다.
그래도 꿈속에서는 떨어졌다는 연락은 받았네, 하고 정신을 차렸다. 아쉽지만, 이번엔 안타깝게도, 다음을 기약하며, 당신의 조각은 떨어지셨습니다 하고 연락받는 건 더 나은 일일까 괴로운 일일까를 생각했다. 아마도 괴롭지만 더 깔끔한 편이겠지. 혹시 나의 연락처를 모른다거나 나의 글이 실수로 누락된 건 아닐까 하고 자아를 졸이는 것보다는.
밥도 집도 이름도 옷도 거짓도 관계도 농사도 표정도. 짓는 건 다 사는 일이 걸린 일들인데 거기서 웬 시가. 웬 이야기가. 인간은 물을 삼키듯 시를 삼켜야 하나, 자리에 눕듯 이야기에 누워야 하나. 자꾸만 별 것도 쓸데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대는 건 나의 에고적 문제가 아니라 태생적 이유와도 같은가. 그런데 왜 나는 떨어졌다는 말에 그런 대답을 했을까.
시도 짓고 밥도 짓고 집도 짓고 다 짓는 거네요.
요즘은 되도록이면 밥을 잘 지어 챙겨 먹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인 동시에 가장 나를 아끼는 일. 그리고 되도록이면 떨어지든 말든 시 또한 잘 지으며 살아가고 싶다. 자국을 발화하는 동시에 치유하는 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글을 '짓는다'고 말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겠다. 잘 먹고 잘 짓고 잘 자고. 그거야말로 인간이 건강하게 잘 나아가는 방향이 아닐까 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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