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카페가 일주일 뒤에 문을 닫게 되었다, 고 쓰다 자신의 글쓰기에 한계를 느낀다. 고작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글의 시작이라니. 나는 매일 앉던 자리에 앉아 벌써부터 이곳을 그리워한다. '아낀다'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장소와 상황에 대한 애정, 아침에 나누는 짧은 인사, 일주일 뒤에는 사라지고 잊힐 이전의 시간과 이후의 공간, 내년 늦봄에 태어날 아기의 통통한 발목에 대한 상상 같은 것들이 습한 공기에 섞여 여기저기 붙거나 굴러다닌다. 찰싹 혹은 빙글빙글 데굴데굴. 도대체 이 뒤섞인 감각을 어떻게 적어내려야 할지.
적확한 언어로 발화된 감정과 생각은 홀가분하다. 그러나 그전까진 미적지근하게 남은 잔해를 끌어안아야 할 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끌어안고 있어야 할 조각들>
잔디에서 늘어져 있던 세 마리의 고양이가 켜는 기지개의 화음
공간에 가득 퍼진 노릇한 빵냄새
고양이가 까치를 쫓는 추격전
작은 정원에 펼쳐진 바질과 애플민트의 향연
가득 얻은 바질로 담근 토마토 바질 마리네이드
큰 창 너머로 보이는 계절 감각
폭우에 크게 고이던 물
라테와 설탕 한 스푼
혼자 있던 생일에 사장님께 선물 받은 딸기 슈크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그들의 생활로 인한 나의 휴식
실내를 가득 채우던 화분
눈 오던 날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과
몇 개의 눈사람 몇 개의 눈덩이
자주 올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 때로 누군가와 함께였지만 대부분은 혼자 아침 아홉 시에 들러 연한 라테 한 잔에 설탕 반 스푼을 타서 마셨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밖을 보거나 그냥 아무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어느 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환호성을 질렀다. 말 그대로의 환호. 정말? 너무 잘 됐다! 다행이다! 또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이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묻자 딸이 원하던 대학에 수시로 입학했다며 반색했다. 그렇게 좋은 일은 같이 기뻐해야죠. 카페에 있던 모든 이는 박수를 쳤고 환호의 주인공은 같이 기뻐하던 이들에게 커피 한 잔씩을 샀다. 흔히 말하는 골든벨이다. 커피 한 잔씩을 사서 모두가 박수를 쳤던지 일의 선후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기쁨과 놀라움과 환희가 구가되던 날. 그런 점점점의 기억들.
이곳이 문을 닫으면 그중에 무엇이 가장 그리울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제는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다*는 말처럼 너무 뻔하지만, 당연하던 어떤 것이 사라질 때면 다시 한번 느낀다. 여전한 것들에 감사해야지. 한껏 즐겨야지. 비가 올 때 잎이 폭 젖지 않으면 또 언제 그칠지 모른다. 우리를 이루는 모든 전제는 여름 비처럼 내리는 것도 그치는 것도 너무나 쉽고 뻔하다. 어쩔 수 없이 흐르고 만다.
나의 글쓰기는 모자람 투성이다. 바다를 쓸 때면 조금의 소금기만 글에 남고 다 밀려나가고 여름에 대해 쓸 때면 글에 약간의 푸른 기만 번져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쓰고, 계속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소금기와 일렁임, 반짝이는 물결, 가끔 튀어 오르는 물고기, 그런 것들을 하나씩 써나가 모으겠다고. 그러면 바다도 여름도 비도 사람도 어렴풋한 형태를 갖출 거라고.
하고 많은 그리울 것들 가운데
아마도 나는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가장 그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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