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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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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05. 2020

주먹 고기

나도 한입만, 20191101




손톱으로 통통하고 뽀얀 제 얼굴을 할퀴는 게 무서워 여태 손 싸개를 하다 며칠 전 그만두었다.

생후 50-60일 정도부터 손 싸개를 졸업하는 게 아가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말 때문이었다. 손의 감각을 인지하고 소근육과 촉각을 발달시키려면 미니 글러브 혹은 도라에몽 손을 연상시키는 손싸개를 벗겨야 한다나. 큰 맘먹고 아기의 손톱을 가능한 아주 짧게 깎고는 과감히 손 싸개를 모두 서랍에 넣어버렸다.

그 후 몇 번 얼굴을 긁긴 했으나 아가의 회복력, 피부 재생력은 얼마나 좋은지 하루면 금세 사라졌다.

이 놀라운 재생능력이라니. 어쩌면 울버린은 아기 때의 힐링 팩터를 그대로 갖고 어른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몰라(아닙니다).



이전엔 손 싸개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빨아대더니(이것 또한 위생상의 문제로 손싸개를 졸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젠 손이다.

쪽쪽쪽 거리며 잘도 빤다.

아직 손가락을 온전히 펴지 못하기에 꼭 쥔 주먹 어딘가를 냠냠 먹는다.

얻어들은 짧은 지식에 아기들의 손가락 빠는 버릇은 쪽쪽이를 무는 것보다 고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 안 돼."



습관이 되기 전에 그만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전하고 싶지만 아기의 언어를 모르는 나로선 방법이 없다. 찰떡이의 주먹을 슬그머니 입에서 떼니 이마를 한껏 올리고 미간을 찌푸린다. 세상 억울한 표정이다.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저한테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그래. 살아가며 행하고 되돌아보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긴 하지. 하지만 때론 그 시작을 말려줄 사람이 있었다면 하고 생각할 날도 언젠가 있는 게 삶이기도 해. 혹시 아니? 네가 '왜 내가 아기 때 주먹 먹는 걸 말리지 않았어?'하고 말할지. 

물론 그럴 일은 없을 테고 아기가 주먹을 먹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말이지. 



무엇보다 요 쪼꼬맹이가 주먹을 냠냠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새삼 아가의 성장에 놀란다. 자기 주먹으로 제 얼굴을 때리고 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 주먹과의 거리를 인지하고 사용할 줄도 알다니. 물고 빠는 용도라는 건 부차적인 일이다. 



아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나에게는 그저 연속적인 24시간에 불과한 어제오늘이 아기에겐 태평양 횡단과도 같은 폭과 넓이를 가진다.  

어제 없던 모습이 바로 오늘 발견되기도 하고 동시에 어제의 모습은 오늘이면 사라지기도 한다. 매 순간의 모습은 그 자리에만 머물러 다시 오지 않는다. 눈을 맞추어 꺄르르 소리 내어 웃고 목을 가누고 주먹을 빠는 일. 

그 하나씩의 성장은 비록 누군가에겐 사소하겠지만 나에겐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과도 같다. 


아,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아쉽다.

우리의 아가가 금방 커버리는 것 같아서.

'남의 집 애는 빨리 큰다'더니 거짓이다. 우리 집 애도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빨리 큰다. 



우리 아가, 

조금만 천천히 건강히 성장하자.

주먹 고기는 그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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