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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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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04. 2020

응가하십니까

화장실 기록, 20191031 





매일 찰떡이 변 사진을 찍는다. 예방접종 때문에 정기적으로 찾는 소아과에서 물어볼 요량이다. 대변의 색깔로 아기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데다 요즘 들어 찰떡이 응가에 부러진 연필심만 한 하얀 덩어리들이 나오는 탓이다. 게다가 샛노랗던 똥이 점점 초록과 노랑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오늘의 그 둘의 조화, 반반의 마블링이었다.

쌀 반톨같은 흰 알갱이들과 응가 색을 확인하느라 빤히 똥 싼 기저귀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두고 찹쌀떡 군은 놀린다. 

"에이, 남의 똥을 뭐 그리 빤히 보고 있어."

아마도 그 사이에 '더럽게'라는 형용사가 묵음 처리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내 그 응가가 잔뜩 묻은 엉덩이를 폭, 손바닥으로 감싸고 가는 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응가를 대하는 우리의 처음은 이렇게 능숙하지 못했다. 찰떡이가 우리 앞에서 첫 응가를 했을 때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우리가 떠오른다.  



"똥 색깔이 왜 이래? 활짝 핀 개나리색이야."

"어떻게 씻겨야 하지? 여자아이는 앞에서 뒤로 씻겨야 한댔는데."



다급한 마음에 데려간 욕실에서 서툰 동작으로 기저귀를 벗기고 노란 똥이 치덕한 엉덩이에 손을 대던 처음, 흐-앙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세면대에 아기를 올려놓고 다시 흐-앙. 엉덩이를 씻기던 중 찰떡이가 오줌을 싸서 또 한 번 흐-앙. 아무것도 모르고 물을 막아놓고 씻긴 탓에 노랗고 가벼운 응가가 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진풍경 속에 또 한 번, 

흐-앙. 



한 번도 아니고 하루도 아닌 여러 날 수십 번의 흐-앙 끝에 우린 능숙하게 찰떡이의 응가 한 엉덩이를 씻기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가 풀리면 또다시 풀어야 할 숙제가 생기는 게 육아던가, 이젠 언제 아윤이가 똥을 쌌는지가 의문이다. 아직 냄새가 심하지 않고 똥을 싸고도 울지 않는 아기라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채기 힘들다. 그래서 우린 오전 10시나 오후 1-2시 위주로 자주 엉덩이의 냄새를 맡고 응가 유무를 확인한다. 

내가 품에 안고 있을 땐 찹쌀떡이가, 그가 가슴에 안고 있을 땐 내가, 아가가 말똥히 누워 있을 땐 아무나.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 응가 확인을 할 줄, 

그 응가 상태를 확인하며 건강을 추측할 줄,

손에 타인의 응가가 푸짐히 묻어도 괘념치 않을 줄.

무엇보다 응가가 살아가는 데 건강의 기준이 되고 중요한 것 역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안녕하십니까를 응가하십니까로 바꾸어도 되지 않을까. 응가는 건강의 아주 중요한 척도로 그야말로 상대의 무탈과 안부를 물어보는 셈이니 말이다. 물론 어엿한 두 어른이 그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습긴 하다. 

"응가하십니까."

"덕분에 잘 싸고 있습니다. 모두 응가하시지요?" 



이젠 제법 무거워져서 응가를 닦을 때 두 팔이 후들거리긴 하지만 그때 찰떡이의 무심하고도 편안한 표정이 좋다. 그리고 오직 지금만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경험, 감정들이니 겸허히 응가 타임을 받아들여야지. 게다가 사진을 보신 선생님은 '하얀 알갱이는 분유나 모유가 소화되고 남은 지방 등 영양성분의 찌꺼기'라 하니 걱정말라셨다. 마음 구석 조금이나마 걱정하던 게 아무 이상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찰떡아.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 

그것만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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