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서 있다
누구를 부르려는 건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면서
끄악 끄악 비명을 지르는
횡단보도 붉은 점멸 위 새카만 •
나는 지금 실망한 인간에 대해 몰두하는 중이다
주먹만큼의 실망이 전신의 크기로 펼쳐나가는 것을
아연하게 꺾이는 마음의 다발을
버렸다가
줍고
버렸다가
주으며
너도 똑같지 인간이란 게 별 거 있냐
썩을 년 모두 다 썩을 년
오래전에 죽어버린 할머니의 혼잣말에 장단 치며
그런가요 썩을 년 언젠가는 깊숙이도 썩고
이내 사라질
폴짝,
흰 줄만을 밟기
이렇게 길을 건넌다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새카만 악몽이 나를 삼켜 먹지 않을 거야
미친년 지랄하고 자빠졌네
아니 할머니 그게 아니고요
실망은 실망스러운 자의 몫으로 떠넘기면 어떨까요
부러진 날개를 감당할 수 없다면
끄악 끄악 까만 새는 울고
커진 것은 줄어들 줄 몰라 어느새 나를 뒤따라
우물쭈물 손을 잡는다
까마귀의 호위 아래
폴짝폴짝
자 이렇게 그래 이렇게
흰 줄만 밟으며 길을 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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