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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의 사정

by 윤신


작년 시 작법을 가르쳐 준 시인이 새 책을 냈다. 월세, 공과금, 대출금, 생활비 등을 벌어야 하는데 자기가 쓰는 글은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말들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근근하더라도 쓰기만으로 생활이 유지되는 삶이 부럽다.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 사람의 사정 같은 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타인의 상황을 마음대로 판단한다. 각자가 삼켜야 하는 가시 같은 일들을 짐작하기보다 그쪽이 훨씬 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수영복 입은 그녀의 어깨가 말랐다.


가까운 사이라면 불쑥 전화해 오늘은 날이 흐리니 어디 뜨끈한 국밥이라도 먹으러 갈까요, 묻고 싶은데 우리는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하루 한두 번 이메일을 확인한다. 광고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서점이나 투고한 곳에서 연락이 온다. 일주일 전에는 서점이 문을 닫으니 팔리지 않은 남은 한 권을 보내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사장이 출판 마케터로 취직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서점을 운영하기는 어렵겠지. 요즘 가끔 들리는 서점의 주인은 디자인을 하면서 서점도 운영하고 사진관도 운영하고 있다. 한 번에 하나, 특히 책 하나로는 아무래도 생계를 꾸리기가 꽤 어려운 모양이다. 그런데 출판 마케터라니. 하긴 읽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그쪽이 벌이는 더 괜찮겠지, 전전긍긍 팔린 책의 권수를 따지는 것보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더 마음 편하겠지, 또다시 남의 사정을 제 멋대로 생각하고 만다.


그러면 나의 사정은 어떤가.


먼저, 투고한 곳이나 발표를 기다리던 곳들에서는 여태 연락이 없다. 지금껏 오지 않았으니 영 올 일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끝내 받지 못한 러브레터처럼 나는 벌어지지 않은 일의 속과 감격을 영영 모를 것이다. 그리고 지난달 초 예술 창작 지원금을 받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교통사고가 났다. 예술 창작 지원금으로 삼백만 원인가를 받는데(친구가 한 달 월급 같은 개념이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 예술로 한 달에 그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에서 그러면 참 좋겠다!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합의금으로는 이백만 원을 받게 되었다. 책으로는 벌지 못하던 돈을 이런 식으로 받다니. 씁쓸하기도 멋쩍기도. 물론 그 돈으로는 알뜰살뜰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작가님, '책이 안 팔리네' 고민하시나요?


어제의 이메일 제목이다. 뜨끔했다. 어떻게 알았지? (당연히 내 책을 파는 플랫폼에서 온 메일이니 알 수밖에 없다) 빠른 속도로 메일을 확인한다.(방법을 다오, 내 책이 팔릴 방법을!) 내용은 단순했다. 서점의 메인화면 최상단에 책을 4주 동안 띄워주는 광고자리를 돈으로 판매한다는 것.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괜히 맥이 풀렸다. 그래서 얼만데? 가격을 보고 곰곰이 수지타산을 따지며 지금이라면 특별히 10만 원을 할인해 준다는 말에 혹하기도 했다. 열심히 쓰면 잘 팔릴 거란 생각을 막연히 하던 때가 있었다. 꾸준함이 재능이라는 말을 붙들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진짜 재능은 자신이 아닌 주위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해도 될까, 계속 가도 될까, 고민을 붙들고 지내는 요즘이다.


저 정도는 해야지. 오래전 골룸 분장을 한 개그우먼을 보고 엄마가 한 말이다. 저 정도는 해야 성공한다. 성공하려면 저 정도 각오(?)는 해야 한다. 도대체 나는 어떤 각오와 분장을 해야 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골룸은 아니겠지만 그 정도의 각오(?) 여야 하지는 않을까. 그러면 근근하더라도 쓰기만으로 생활이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또 그때는 그때의 사정이 불쑥 생기겠지만 그건 그때 가봐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지금을, 지금의 쓰기만을 생각하자고 덜 마른빨래처럼 탁탁 마음을 털어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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