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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든 쓰지 않든

by 윤신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어떤 살아있는 것의 빛>



네 글은 시 같아, 라는 말을 들었다. 독립출판으로 에세이집 두 권을 냈는데 두 권 다 그랬다. 그것도 자주. 시가 뭔데? 라는 생각에 며칠 몇 달 몇 년 시를 읽었다. 짧은 단어들에 담긴 무게가 무거워 읽다 덮기를 여러 번. 발끝으로 땅을 딛고 홀가분하게 흔들리는 시어와 시선이 가뿐해 살랑살랑 따라 걸었다.


점점, 점점.


중력을 받지 않는 단어들.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 공처럼 튀어 오르는 유년. 어떤 다짐이나 하루. 매일 입고 쓰는 생활을 시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속을 유영하듯 자유로운 숨으로 적어 내리고 싶다는 생각.


마음대로 쓴다. 시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안에서 굴러다니는 유리 조각 같은 낱말을 모은다. 투명하거나 붉거나 둥글거나 날이 선. 그런데 이게 맞나. 애당초 맞는 게 있나. 헤매다가 또 쓴다. 쓰다 보면 길이 있겠지. 없으면 말고. 말다가도 쓰겠지만. 쓴다고 딱히 나아지는 것도 없지만. 그냥 쓴다. 그리고 생각한다. 제자리를 걷는 물음.

그러니까 시가 뭔데?


딱히 시가 아니었어도 썼을 테지만 시라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찰스 부코스키의 nirvana를 읽을 때 흩날리는 눈과 순간의 흔들림, 메리 올리버의 시에서 흐르는 위대한 고요, 안미옥 시인의 바탕에 깔린 생활의 다정과 몇몇 시인들이 건네는 처절한 아름다움 혹은 불완전한 인간의 슬픔. 시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들. 한참을 읽고 한참을 적어도 모를 시지만 그래도 계속 쓰고 싶다고, 이왕이면 잘 쓰고 싶다고 여긴다. 잘 쓰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에 잠깐이라도 남으면 좋겠다고, 세상에는 이런 인간도 시선도 있습니다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나의 시들이 그들에게 가서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는 원래 그들의 것인 양 거기서 푹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그런 글을 읽었던 것도 같다. 소설은 완벽한 ‘남의 서사’, 에세이는 대충 ‘남의 일상’, 시는 남의 고백에 살짝 끼얹는 ‘나의 투영’. 어쩌면 이건 그냥 지금 내가 막 지어낸 걸 수도 있겠다.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의 글을 써서 되나, 잠시 한숨도 쉬고.


자주 기웃댄다. 주섬주섬 주머니에 내 시를 꽂아두고 당신이 읽기에 이건 어떤가요, 인쇄된 프린트물을 들고 돌아다니며 묻고 싶은 심정으로. 혹시 누군가 아, 괜찮네요,라고 대답하면 그 사람을 소매를 붙들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가 괜찮은가요,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데, 시가 뭐지요.

나는 부끄럽고 나의 시는 끝도 없이 부끄러우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그러니,

읽고 쓸 수밖에. 자그마한 내 책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썼다 지우기. 지운 걸 되살리기. 역시 이건 아니지, 다시 지우기. 쓰든 쓰지 않든 세상은커녕 우리 가족에게도 아무 영향 없는 시를 그렇게 오늘도 쓰고 지우기.


좋아한다. 좋아서 그런다. 이해되지 않는 마음에도 시를 쓰는 이유는 그저 시가 좋아요, 시가 너무 좋아요, 이런 대책 없는 마음. 좋아하면 불쑥 시선이 가고 괜히 화도 나고 그러니까. 한없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게도 하니까. 그러니 일단 쓸게요, 잘은 모르지만 써볼게요. 불쑥 잡은 소매에다 대고 말하고 싶지만 역시나 부끄러운 나는 그냥 책상에 앉는다.


그것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vdPkESL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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