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by 윤신



어디까지 왔나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하는 말 하지 않는 말 하려던 말 하다 멈춰버린 말

그 사이의 침묵을 정성스럽게 들어요

소란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낮은 심박수가 당신을 끌어안을 때까지

오직 듣는 일


그래요

사방이 물속처럼 고요한 그곳에서

가만히 듣는 거예요


그랬어야 할 일은 그러지 못한 채 지나갔고

그래서는 안 될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조용히 눈과 입을 닫고 잠시 쉬어보아요

이 세상은 눈앞에서 굴러가는 주사위

보이지 않는 면과 빗나간 순간이 벌인 축제라지만

언젠가의 어긋난 타이밍과 최악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모든 이후


믿어줄래요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있대요

지금의 긴 호흡으로

우리는 과거를 놓아줄 수 있대요


오직 듣는다면


침묵이 건네는 목소리와 빛의 방향과 숨의 흐름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한 걸음 뒤의 우리를 끌어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과거를 만들 테니


자 들어봐요,

당신의 무릎 뒤에서 작게 터지며 몸을 움직이는

탄산 같은 과거의 소리를

어제의 당신이 잘 가, 하고 건네는

빛이 스치듯 가벼운 목소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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