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ctice. all is coming

by 윤신




사바 아사나는 주로 수련의 맨 마지막에 하는 자세다. 자세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것이, 얼핏 보나 자세히 보나 그냥 누워있는 것에 다름없다. 등을 대고 바닥에 누워 팔과 다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벌리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다. 눈을 감고 코끝을 살짝 쇄골 쪽으로 당겨 편안하게 숨 쉰다. 그리고 숨이 천천히 몸을 통과하는 것을 바라보며 몸 전체를 이완시킨다. 이 일련의 과정에는 어떠한 의지나 긴장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의지와 긴장을 몸 밖으로 흘려 내보내는 것. 종일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나 불쑥 튀어 오른 감정을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것. 작은 죽음. 말 그대로 시체처럼 누워 나의 몸과 생각을 관망하는 일이다.


벽에 등을 대고 서서 몸을 뒤로 젖혀 팔을 벽으로 뻗는다. 뻗은 팔과 손바닥이 아래로, 더 아래로 가 끝내는 바닥에 닿을 수 있도록 연습하는 수련이다. 척추를 신전시키며 힘껏 팔을 뻗어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여유롭게 후굴이 이루어지는 몸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 다시 해보지만 나에게 한 뼘은 건물 한 층높이만큼이나 멀다. 그다음은 핀차마유라 아사나. 팔꿈치와 팔뚝으로 몸을 버텨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이다. 그리고 핸드스탠드. 요가 용어로는 아도 무카 브륵샤아사나로 바닥에 팔을 쭉 뻗어 몸 전체를 지탱하는 자세다. 핸드스탠드는 처음이라 내 팔이 과연 몸을 버틸 수 있을지 의심부터 들었다. 그 의심이 커지기 전 먼저 다리를 차버린다. 두려움은 점점 커지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알갱이처럼 아주 작을 때 이겨내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당찬 마음과는 달리 몇 초도 되지 않아 다리가 가볍게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차올린 뒤 또 몇 초. 수련 전, 옆자리에 앉은 분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몸이 마음대로 안되죠. 꼭 인생처럼.' 그리고 세 번째 다리를 차올릴 즈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나 힘든 수련을 하고 있을까'


사바 아사나를 하면 몸이 이완되고 피부의 온도가 살짝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여름에도 서늘한 깊은 숲에 들어간 기분이다. 그런데 문득 가슴 안쪽이 뜨거워진다. 놓지 못하던 생각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아이와 내가 지나는 새로운 시작과 그 시작으로 인해 만난 고마운 마음들, 염려들. 부드럽고 뜨거운. 말캉한 뭔가가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났다. 가만히 누워 사바 아사나가 끝날 때까지 그 감정을 그대로 두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일렁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일렁임의 시작을 손끝으로 거슬러가 보니 그 끝에는 있는 힘껏 애를 쓰며 벽을 밀던 시간이 있었다. 들 수 있는 만큼, 뻗을 수 있는 만큼, 버틸 수 있는 만큼, 젖힐 수 있는 만큼. 나의 한계를 피하지 않고 마주했던 순간, 모든 걸 토해내듯 벽과 매트를 밀던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바 아사나는 거기에서부터 이어지는 게 아닐까. 비워내야만 채울 수 있다. 자유와 안도는 붙들고 쥐던 힘을 놓았을 때야 알아챌 수 있다. 싱잉볼의 진동이 수면에 이는 물결처럼 퍼진다. '오늘 어렵다고 내일 어려운 건 아니에요.' 선생님이 말한다. practice, all is coming. 몸을 단련함으로써 마음이 함께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바 아사나는 작은 죽음. 매트에서 일어나면 우리는 새로 태어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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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