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수련을 했다. 유리창으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바깥이 캄캄하던 고요한 밤과 달리 이른 시간의 요가원은 빛으로 환하고 부드럽다. 수련원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 그림자에도 숨을 수 없이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매트에 앉았다. 저녁보다 굳은 몸으로 차분히 호흡과 움직임을 이어간다. 아침과 밤. 시간에 따른 빛처럼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몸으로.
수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몇 번이고 되짚는다. 안 되는 자세는 여전히 되지 않고 막히는 숨은 같은 자리에서 막힌다. 나아질까. 어쩌자고 지도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을까. 선생님은 지도자라고 모든 자세가 수월히 되는 것은 아니며, 지도자 과정을 밟으며 생기는 확신과 발견은 분명히 있을 거라 했지만 나는 자꾸만 멈춰서 있는 기분이 든다. 거대한 폭포 앞에서 머뭇거리다, 그 물줄기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사람처럼. 두려움과 경외를 안고 미끄러지듯 걸어간다. 멈춰 있진 않지만, 정지한 몸처럼 아주 조금씩 움직인다.
아니, 의문이 든다. 정말 나는 달팽이의 속도만큼이라도 전진을 하고 있나.
'애매하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형용사다. 이 형용은 주로 나를 수식하는 데 쓰인다. 애매한 재능, 애매한 성과, 애매한 끈기, 애매한 외모, 애매한 집중력. 지금껏 해 온 나의 모든 일에 적용되었지만 여태 불만은 없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았고 무얼 하든 못하는 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애매함은 뭔가를 잘하려 할 때 유난히 큰 걸림돌이 된다. 이를 테면 수영을 잘하는 편이지만 손과 발, 키가 작아 빠르지 않은 탓에 특별히 뛰어나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읽고 쓰는 것, 관찰하는 것도 좋아해서 어쩌다 글을 쓰며 살고 있지만 생계로 붙잡기에는 애매한 정도다. 그저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여기지만, 속에서는 '조금 더'라는 갈증을 느낀다. 나의 신조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인 것도 나의 성향과 저 모든 상황들을 인정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애매한 무언가를 지속하려면 그것을 인정하고 계속하는 수밖에는 없다. 시간은 결국 드러낸다. 그러니 '하는 시간'을 쌓는 수밖에 없다. 무수한 점을 만들고 내 그 점들을 이어 나가는 수밖에.
선생님은 아침의 수련에 대해 말한다. "아침에 몸이 더 뻣뻣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이 시간들을 버티고 몇 년이 지나다 보면 아침과 밤, 그렇게 차이가 없게 됩니다." 시간이 해결한다는 말은 만능처럼 들린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거기에는 몰입하는 시간. 대상에 대해 진지하게 관측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뭘 굳이 다 잘해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잘하고 싶은 게 생기니 조바심이 난다. 그 마음도 나의 것, 그 자리에 두기로 한다.
다시 아침. 고무 밴드로 어깨를 잘 풀고 필요한 근육의 간단한 보조 운동을 한다. 등 위에 요가블럭을 두고 흉추를 풀어 보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표정을 살피듯, 여러 시선으로 내 몸을 바라본다.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아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다. 아침과 밤, 어제와 오늘.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순간을 이어간다. 어느 순간, 그 곡선이 스스로를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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