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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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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07. 2020

별명은 서너 개

너의 별명, 20191202  





별명은 하나의 관심과 애정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 사람의 특색, 차별점을 콕 집어내 약간의 엉뚱함을 섞어 그를 돌아보게 부르는 이름.

스스로 만들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또 다른 세상살이 이름. 

(어린 시절 몇몇의 것은 제외한다. 그때 지어진 별명은 꽤 직관적이고 단순하기 그지없다. 김 씨 성을 가진 아이는 김밥, 박 씨 성을 가진 아이는 바가지, 참고로 내 이름은 '신'이었기 때문에 성이 아닌 이름에 갖다 붙인 별명이 많았다. 고무신, 짚신, 심신 혹은 윤상)



나의 딸, 찰떡이의 본명은 김아윤이다. 

김 씨와 윤 씨 사이의 아이라는 뜻의 약자인데 그에 맞춰 마음에 드는 한자를 찾아 끼워 맞췄다. 한글과 한자 그 사이의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셈이다. 우리 부부는 한자의 뜻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우리의 딸이 가지면 좋을 것'에 대해 고심했다. 왜,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고 하지 않는가. 내 이름에 믿을 신信 자가 들어가는 탓인지 난 가끔 아니 자주 지나치게 타인을 믿는다. 그로 인해 가족에게 타박을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고, 니 그래가 어예 살래." 

"누나 그카다가 큰일난데이."

하지만 난 아직 무탈히 잘 살고 있고(물론 된통 당하는 몇 가지 사건은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난 의심하며 사느니 믿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 아직 정신을 덜 차렸나 봐, 엄마. 



어쨌건,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아직도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한자의 압도적인 양에 지레 겁먹던 찰나 다행히도 마음에 쏙 드는 의미를 찾았다. 

아름다울 아妸, 햇빛 윤昀. 

부디 세상에 공평하게 비치는 아름답고 따뜻한 햇살이 되기를, 하는 마음을 담은 아이의 이름이자 2019년 출생신고 한 여자아이 이름 순위 중 915명으로 35위를 한 이름이기도 하다. 내 주위에 아윤이라는 이름이 없기에 생각보다 많기도 하고 어감이 주는 부드러움에 비해 적기도 하다. 914명의 아이 중 나의 딸과 한자마저 같은 아이가 있을까? 분명 있겠지? 성까지 같은 아이는 확실히 있을 거야. 

-참고로 2019년 여자아이 이름 순우 1위는 지안, 2위는 서아, 3위는 하윤이다. 



김아윤, 그렇게 아가의 이름은 하나인 반면 별명은 거의 며칠에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다. 

요 작은 존재는 거의 별명 공장이다. 폭폭폭, 별명 구름을 만들어 내는 아기 공장장. 

상황이나 부르는 이의 기분에 따라 별명은 또 그때그때 다르게 불린다. 

‘내 동생’이란 노래의 곱슬머리 동생은 엄마, 아빠, 누나가 부르는 별명이 달라 서너 개인데 찰떡이는 대략 잡아도 열 개다. 시간이 지나 짧은 기억력에 뺏기기 전에 하나씩 적어보도록 한다. 



1. 예민 보스

실컷 재우고 돌아서는 길, 몹쓸 무릎이 뚜둑 단말마의 비명을 낸다. 그 소리는 즉시 ‘으아아아아앙’ 찰떡이의 울음을 부른다. 팍팍하게 굳어버린 몸뚱이도 서러운데 다시 재우러 들어가는 발걸음은 오죽하랴. 

사실 그보다 더 작은 소리에도 금방 고개를 번쩍, 눈을 반짝, 울음은 쩌렁하는 우리 예민 보스. 



2. 귀여운 똥땡이

한 달 남짓 되자마자 통통히 오른 몸과 얼굴을 보고 우린 아가를 ‘귀여운 똥땡이’라고 부른다.  찹쌀떡 군은 주로 ‘뚱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특히 어떤 단어에도 ‘예쁘다’,’ 귀엽다’를 붙이면 다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기를 낳고 나서 “나 이제 돼지 같지?”라고 물으니 손사래를 치며 대답한다. “에이, 무슨 자기가 돼지야!! 자기는 ‘예쁜’ 돼지야.” 기분이 묘하다. 좋은 건가, 그거. 



3. 살더미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살더미. 처음 간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토실한 찰떡이의 허벅지를 보고 감탄했다. “허허허. 이렇게 튼실한 허벅지는 처음이네요.” 허허허. 그러시군요. 



4. 아기 너구리 

내 별명이 너구리다. ‘오동통통~너허구리(CM송)’에서 딴 건지 어쩐지는 몰라도 언젠가부터 난 너구리가 되었고 자연스레 내 딸은 아기 너구리가 되었다. 가끔은 너굴 주니어라 불리기도 한다. 



5. 우유주머니

간혹 부르는 별명이다. 물주머니가 찰랑이듯 가끔 찰떡이 몸에서 찰랑, 물결치는 소리가 난다. 고 탐스런 배에 우유가 가득한 가 보구나, 귀여운 녀석. 

아가는 우유만 먹으니 우유주머니 혹은 우유병. 



6. 김찰떡

태명이 찰떡이요, 성은 김이라네. 



7. 팔색조

몇 번인가 찰떡이의 할머니가 아가를 팔색조라 불렀다. 시시때때로 다르게 보이는 얼굴 때문이다. 팔색조는 실제로도 일고여덟 색의 화려한 깃털을 자랑한다. 그에 반해 찰떡이는 부어 있던가 울던가 활짝 웃던가, 같은 얼굴로 갖가지 표정을 지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얼굴로 다르게 보이기가 더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손녀 사랑은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너무 이쁜 별명이다(우리가 지은 것에 비해). 



8. 똥강아지

경상도에선 ‘똥강생이, 똥강새이’라고도 한다. 애정이 담긴 사랑스런 생명체를 부르는 애칭이다. 어느샌가 난 ‘똥꾸멍이’라고 불렀지만 그 애칭은 찹쌀떡 군을 위한 것이므로 아껴두기로 한다. (바보 똥꾸멍이가 어원입니다)



9. 킁캉이

킁캉이가 킁캉킁캉 거릴 경우는 대략 두 가지다. 첫째, 배가 고프기 시작할 경우. 둘째, 배가 고파 잠에서 깨어날 경우. 정말 글자 그대로 코 막힌듯한 ‘킁캉’거리는 소리를 낸다. 자다가 저 소리를 들으면 조용히 문 열고 부엌으로 가 분유를 탄다. 



10. 꽃게

아가는 약 한 달 전부터 꽃게가 되었다. 보골보골 거품 물듯 침을 뿜어낸다. 2-4개월의 아기는 침샘이 급속도로 발달해서 침이 많이 생기지만 그걸 삼킬 줄을 모른단다. 하, 얼마나 귀여운 인체 구조인가. 생리적으로는 일정한 속도로 발달을 하나 그에 대한 반응은 조금 느리다. 뿜어져 나오는 침을 어쩔 줄 몰라 조록, 조로록 흘린다. 하지만 찰떡이는 흘린다기보다 말 그대로 꽃게처럼 뽀골뽀골 거린다.   



11. 분홍 소시지

스와들 업이라는 아기 옷이 있다. 모로 반사 때문에 깨는 아기를 위한 옷의 일종으로 얼굴을 남겨두고 몸 전체를 하나로 모은다. 팔다리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줄이기 위함이다. 찰떡이 역시 파닥파닥 거리다 자기 팔에 놀라 울기도 하고 제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S사이즈는 한 달 무렵부터 입지 못했으므로 M사이즈를 주로 입혔는데 처음엔 옷의 반만 채우던 몸이 점점 꽉 끼기 시작했다. 유난히 배가 통통해서 배 부분은 정말 옷이 찢어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어져있다. 여튼 그 스와들 업의 색상이 분홍색. 

그 옷을 입으면 찰떡인 영락없는 소시지가 된다. 오동통 분홍 소시지. 

이제는 너무 꽉 끼어 입히지도 못한다. 



12. XX

자체 심의에 걸려 차마 적지 못할 별명이지만 혼자서라도 기억하기 위해 적는다. 우리 XX이. (엑스엑스 아닙니다)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적으니 열한 개다. 하지만 분명 더 있다. 늘 아가를 품에 안아 관찰하니 별명이 없을 수가 없다. 별명은 남이 누군가를 생각, 혹은 얕게 정의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본다. 그리고 대부분 그 안엔 따뜻한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다. 그러니 학창 시절 바보 같은 별명이라도 하나 있는 게 외려 다행이다. 누군가에게 남다른 이름으로 불린 증거니까. 



찰떡이의 별명을 적다 보니 내 별명은 어땠나, 기억을 굴려본다. 내게 또 다른 이름을 지어준 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나저나 나의 딸이 커서 이 글을 보면 어떨까. 

과연 좋아할까? 

킁캉이와 귀여운 똥땡이를 그리고 분홍 소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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