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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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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06. 2020

머릿속 육아와 손 위에 놓인 육아

멋모르는 엄마의 일기, 20191130





찰떡이가 태어나기 전, 아기방을 따로 만들어 혼자 재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외국 스타일(만고 내 생각)로 독립적인 아기를 키우자는 맹랑한 꿈을 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TV 프로그램의 건후라는 아가도 혼자 울지도 않고 잘 자고 깨지 않는가.

'한번 해보자.'

다른 아기가 할 수 있는 걸 우리 아기가 못하겠어?라는 쓸데없는 비교와 근본 없는 자부심을 인정한다. 아기의 입장과 성향을 생각하지 않은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역시나.

아가가 집에 오고부터 다른 방에 재우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방을 만들어 따로 자는 건 엄마가 삐거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아가방과 제 방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날락해야 하는 의미였다. 잠시 재우고 돌아올라치면 금방 아가는 울고 간신히 달래 방으로 오면 곧 아기의 수유시간, 기저귀 가는 시간이 된다. 극도의 부지런함과 체력, 인내를 필요로 하는 무한 반복 행위다.



시도도 없었고 포기는 쉽고 빨랐다.

그래. 그럼 깔끔하게 아기방은 포기하고 아기침대로 하자. 우리 침대 옆, 아기침대를 두고는 토닥토닥 재워보자. 하지만 '등 센서'란 게 이런 건가. 눕히면 까만 단추 같은 눈을 반짝 뜨고는 꿈틀대기 시작했다. 막 연애를 시작한 사람의 마음마냥 그렇게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처음 한 달을 그렇게 고생하고 손목에 인대 결절종이라는 영광의 상처를 얻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나도 좀 쉬자.' 한낮에 아기와 나란히 누웠다. 그전까진 아기와 함께 누워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벼룩 같은 크기의 독립심이라도 길러진다 생각했을까.

 -여기서 의문이 든다. 독립심은 애당초 혼자 자야만 생기는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절대 그러진 않을 것이다.

바닥에만 뉘면 공룡 소리를 내며 울어대던 아기가 웬일로 고양이 정도의 울음에 그쳤다.

그리곤 조금 뒤 새근새근 자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게 잠이 들다니 놀라웠다. 이유는 모른다. 찹쌀떡 군은 아마도 우리 침대가 더 비싸니 그걸 알아보는 고급 몸이라고 했지만, 정말일까. 사실 처음 모든 살림을 고를 때 침대만은 좋은 품질의 것으로 알아보긴 했다. 잠을 잘 자야 삶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글쎄.

어쨌든 그 이후로 아가는 제 아기침대에서는 응앙응앙 울기만 하고 눈을 감지도 않으면서 우리 침대에 함께 누우면 이내 곤히 잠든다. 침대는 과학이라더니 정말 높은 확률로 아기에게 단잠을 선사한다. 



이 녀석, 침대를 알아보는 똑똑한 녀석.

그렇게 얘기하며 우린 며칠 전부터 이 작은 아가와 함께 잔다.

조금이라도 아기를 편히 재우려는 농도 100%의 마음이다. 독립심이고 어쩌고 아기방은 물론 아기침대를 포기한 데 조금의 후회도 없다. 아기를 기르며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아기를 재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워서 '쉬이이이' 소리와 토닥토닥으로 재울 수 있다면 우리 침대의 반은 기꺼이 내줄 수 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이다.

아기는 그 작은 몸으로 우리 침대의 반을 쓴다.

팔다리를 쭈욱 피고 큰 대자로 뻗어 자는 찰떡이 때문에 우린 등 굽은 새우마냥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잔다. 그러다 찰떡이가 휘두른 손 방망이에 맞은 적도 있고 침대 끝에 자던 찹쌀떡 군은 몇 번 바닥에 떨어질 뻔도 했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준다더니. 쉬이 아기를 재우는 대신 어깨 결림과 팔 저림을 얻었다. 한동안 등 굽은 새우, 혹은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리던 우린 결국 하나의 수를 냈다.

한 명이 바닥에서 자는 것이다. 

(흠, 이틀째 써본 이 방법도 100% 만족스러운 묘안은 아니다. 아마 우린 매일 밤 새로운 수를 강구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꿈꿨던 아기 방은 허무맹랑한 영화였던 듯싶다. 우리의 것이 아닌 건너 건너 건너집의 것, 혹은 화면 속 영화의 것. 그러고 보면 아기를 직접 키우기 전이기에 단언할 수 있는 육아관이 얼마나 많은가. 머릿속 육아와 손 위에 놓인 육아는 180도 다르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그렇듯 모든 게 계획대로만 되진 않는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지만.



게다가 아기와 함께 자니 좋은 점이 또 있다.

품 안에서 곁에서 찰떡이의 숨 냄새, 숨소리를 두는 행복이다.

(아침에 일어나 뽀뽀 백번 하기도 쉽다)

아가가 뱉는 이 숨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제가 우리와 함께 자길 거부하는 시간이 올 텐데 뭐 하러 지금부터 떨어지려 하나 싶기도 하고, 독립심은 그저 혼자 잔다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아니란 것도 안다. 아기를 키우면서도 뭐하나 단언할 수 없는 멋모르는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하나도 아닌 일주일에 하나, 어쩌면 한 달에 하나씩 배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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