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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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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08. 2020

눈 오는 날의 하늘 카페

20191203





얼음 결정체들이 하늘을 부유한다. 

겨울이다. 

직접 보지 못한 첫눈은 유니콘처럼 불확실한 신화다.

'안녕', '응, 안녕' 눈의 인사는 희고도 다정하다. 

실재를 보니 잊고 있던 존재가 실감이 난다.(실재를 봐야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 이곳에 숨을 쉬듯 눈雪도 여기에 있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이 절실하다. 늘어지는 내 몸은 카페인을, 차가운 공기는 뜨거운 목 넘김을 부른다. 정오가 지난 시각 아파트 꼭대기 층, 하늘 카페(카페 이름)로 향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와 함께 집 밖을 나서는 일은 42수(手) 관음상처럼 많은 손을 필요로 한다. 고작 이수(手)의 인간인 내가 주섬주섬 아가의 물건을 챙기는 건 쉽지 않다. 몸만 훌쩍, 떠나던 일 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혹시 모를 기저귀, 아기 물티슈, 젖병, 45°의 150ml 정도의 물, 소분한 분유, 가제 손수건, 아기 띠, 작은 담요, 아기 로션을 을 챙기고 나가다가도 아차, 여벌 옷을 챙길 걸 그랬나 다시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 많은 짐 사이에 오늘은 특별히 작은 책 한 권을 더 챙긴다. 산더미 같은 물건들 중 오롯한 나의 물건이다. 

혹시 모를 잠시의 여유, 과연 생길지 모를 잠깐의 틈에 읽을 책이다. 한두 페이지라도 읽으면 다행이라는 마음을 접어 겨드랑이에 끼고 간다. 



카페는 한산했다. 

백일 즈음의 아기가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고  바리스타는 고개를 쏘옥 숨기고 책을 읽는다.

나른하고 한가한 오후의 풍경이다. 

멀리 나즈막한 산이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찰떡아,

조금씩 날리는 눈발과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니. 

오밀조밀 사람들의 살아가는 생활이 보이니. 



웬일로 아가는 유모차에 잘도 누워 있다. 이 새빨간 유모차를 거쳐간 아가가 7명이다. 모두들 내 딸의 시기를 지났겠지. 처음 이 유모차를 타던 아이는 여덟 살이 되었을 테고 그다음 아이는 일곱 살, 그다음은 여섯 살, 또 그다음은…. 그렇게 8번째의 아가가 내 딸이다. 아마 올겨울을 지나고 내년이나 내후년의 이맘때쯤이면 찰떡이 보다 한 살 어린,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아기가 타고 있을 테지. 지나간 사람과 지금의 사람, 다가올 사람, 존재하는 사람과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연결이 빨간 유모차에 가득 담겨있다. 세상은 역시 혼자 살고 없어질 곳이 아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찰나 찰떡이가 고개를 홱홱 돌리며 울 채비를 한다. 

안아야 할 때다. 

찰떡이를 내게 기대도록 앉히고 책을 펼쳐 든다.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났다. 찰떡아, 여기서 눈은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랑 다른 거야. 발음과 철자는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는 많단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님 시시한 건지 아가는 그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구경한다. 휘청이던 목에 이젠 제법 힘을 주고 돌아본다. 오늘로 95일만큼의 성장을 했구나, 아가. 

참 장하다. 



그렇게 우린 하늘의 이름을 딴 카페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보냈다. 꼬옥 안기도, 서로의 눈을 보며 방싯 웃기도, 서로만의 세계에서 잠겨있기도 한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오늘 읽은 책은 몇 번 읽어도 여전히 좋다. 깨끗하고 반듯하게 책장에 꼽아 두고는 언젠가 찰떡이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을 기다린다.

그날에 오늘처럼 눈이 내려도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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